LUCEO 서재책 한 권을, 끝까지 함께 읽습니다

통한다는 증거는 늘 가까운 데서 왔습니다

"말도 안 된다"던 사람이 두어 주 뒤 이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회사 사무실 문간에 말린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
「말도 안 된다」던 대답이 두어 주 뒤에 뒤집힙니다.

어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1986년에 나와 1999년에 고쳐 나온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존 J. 머피가 차트 읽는 법을 열아홉 장으로 쓴 책이에요.

대형 증권사에 있던 시절 그는 차트에서 곧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이 있으면 같은 회사의 다른 부서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기업 실적이나 금리 같은 것으로 시장을 보는 쪽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는 방식을 펀더멘털 분석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거나 「말도 안 된다」 같은 답을 자주 받았다. 아주 자주, 바로 그 사람이 두어 주 뒤에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시장 움직임을 설명할 펀더멘털 이유를 찾느라 허둥댔다." (19장)

열아홉 장에 걸쳐 도구를 설명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 도구가 통한다는 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 이 이야기입니다.

여러 이름으로 행해지는 같은 일

숫자를 굴려 비싼 종목과 싼 종목을 가려내는 사람들은 계량 분석가라고 불립니다. 저자는 그 숫자가 차트를 보는 쪽에서 쓰는 것과 같은 경우가 많다고 적습니다.

증권사가 어떤 종목의 등급을 올리거나 내리는 일을 두고는 독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 「펀더멘털」 변경이 차트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나온 바로 다음 날 그런 변경이 나오는 일이 얼마나 잦은지 눈치챘느냐고요.

논거의 형식이 「우리가 옳다」가 아니라 「모두가 이미 하고 있다」입니다.

1995년 8월과 1997년 가을

1995년 8월, 뉴욕의 한 연방준비은행이 보고서를 하나 냈습니다. 외환 거래에서 차트 패턴 하나가 실제로 쓸모가 있는지 살핀 보고서였고, 제목부터 「그냥 엉성한 패턴이 아니다」였습니다. 그 서론의 첫 문장이 이 책에 그대로 옮겨져 있습니다.

"기술적 분석, 곧 과거 가격 움직임에 근거한 가격 움직임의 예측은,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가진 「효율적 시장」 관념과 양립하지 않음에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이익을 낳는 것으로 밝혀졌다."

효율적 시장이라는 관념은 값에 이미 알려진 것이 다 들어 있어서 과거 값으로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 관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과가, 다른 곳도 아닌 중앙은행 계열 기관에서 나왔습니다. 1997년 가을에 세인트루이스의 다른 연방준비은행이 낸 보고서가 같은 논거로 하나 더 붙습니다.

그런데 두 보고서를 소개하는 자리마다 저자가 괄호를 열고 같은 사실을 한 줄씩 덧붙여 둡니다. 그 보고서들이 이 책을 주요 출처로 인용했다는 것입니다.

보고서가 먼저 이 책을 인용했고, 그 보고서가 다시 이 책의 근거로 돌아옵니다. 그렇다고 그 결과까지 만들어 낸 것은 아닙니다. 보고서를 쓴 것도 그 결론을 낸 것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근거를 대는 쪽과 근거가 되는 쪽이 서로 너무 가까울 뿐입니다.

저자와 이 분야의 이해관계도 그 마지막 장에 함께 적혀 있습니다. 기술적 분석가 자격 제도를 권하는 대목이 있고, 기술적 분석가들의 국제 조직이 1992년에 처음 준 상을 자신이 받았다는 것도 밝힙니다.

그 규칙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선반에 꽂힌 제본된 기관 보고서들. 그중 하나가 반쯤 빠져나와 있다
근거를 대는 쪽과 근거가 되는 쪽이 서로 너무 가깝습니다.

두 보고서가 살핀 그 패턴에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앞의 보고서를 쓴 두 사람은 1999년에 그 작업을 학술지에 실었습니다. 달러 환율 자료 1973년부터 1994년까지를 놓고 수익성과 효율성 두 가지로 따졌고, 초록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우리는 그 규칙이 수익성은 있지만 효율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더 단순한 매매 규칙들에 밀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규칙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 규칙이 다른 규칙보다 나으냐를 따진 결과입니다. 패턴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있습니다. 더 단순한 규칙에 밀릴 뿐입니다. 열아홉 장에 걸쳐 정교함을 쌓은 책에 이것은 「없다」보다 더 나쁜 결론입니다. 없다면 다른 것을 찾으면 되지만, 더 단순한 것에 진다면 쌓아 올린 그 정교함이 값을 못 한 것이 됩니다.

1997년 보고서는 한 사람이 썼고, 그 사람이 2011년에 동료와 함께 같은 주제를 다시 다뤘습니다. 연방준비은행이 내는 워킹페이퍼, 그러니까 정식 게재 전에 공개하는 연구 보고서였습니다. 거기서 1970년대 중반부터 달러 환율에서 나온 그 수익이 1990년대 초에 사라졌다고 적습니다. 자료를 이리저리 돌려 우연히 찾아낸 결과가 아니었다는 것도 따로 밝혀 둡니다. 진짜 있던 수익이 그다음에 없어진 것입니다.

"그 수익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 수익성이 사라졌다"

없어진 이유는 한 문장으로 적혀 있습니다.

"비교적 단순한 기술적 규칙들은 주요 변동환율에서 1975년경부터 1990년경까지 적어도 15년 동안 진짜로 수익이 났다. 그 단순한 규칙들의 수익성이 학술 문헌에 널리 알려지면서, 그 규칙들의 수익성이 사라졌다."

알려지면 우위가 닳습니다. 같은 규칙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면 먼저 들어가서 얻던 몫이 남지 않습니다.

알려진다는 것이 우위를 깎는 쪽으로만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무게를 실어 주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근거가 된 것은 전부 가까운 데 있었습니다. 저자의 논거는 저자의 일화였고, 그 논거를 받쳐 준 보고서는 저자의 책을 인용한 보고서였습니다. 표본이 하나일 때 그 하나가 곧 근거가 됩니다. 이 구조는 학술지 밖에서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2026년 5월에 국내의 한 증권사 리서치가 규칙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한 반도체 회사의 시가총액이 다른 반도체 회사를 넘어서면 그것이 강세장 정점의 신호라는 것이었고, 근거로 든 것은 2000년 닷컴 국면의 사례 하나였습니다. 시가총액은 주가에 발행 주식 수를 곱한 값입니다. 표본은 하나였습니다.

6월 22일에 그 역전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코스피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종목이 바뀌었고, 같은 날 코스피는 9,114.55로 마감해 사상 최고치를 썼습니다. 고점 신호 경고가 나왔다는 기사도 같은 날 실렸습니다. 지나고 나서 붙인 해설이 아니었습니다. 7월 9일 코스피는 7,291.91, 그 고점에서 20.0% 내린 값입니다.

표본 하나가 이름을 만듭니다

사흘 뒤, 그 규칙을 내놓았던 사람이 이번에는 반대 방향의 판단을 냈습니다. 여러 매체가 그를 폭락을 맞힌 사람으로 소개했습니다.

한 번의 적중이 주는 것은 다음 판단의 권위입니다. 판단이 나아진 것이 아니라 그 판단에 붙는 무게가 달라진 것입니다.

밖에서 보면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규칙 하나를 세워 두고 그것이 맞은 것과, 여러 개를 돌려 본 뒤 가장 잘 맞은 것을 골라낸 것은, 결과만 놓고 보면 같은 모양입니다. 맞힌 쪽이 어느 편인지는 맞힌 사람만 압니다.

단서는 그 책 안에 있습니다. 열아홉 장을 다 쓰고 매매 전에 짚어 볼 질문 목록을 맨 뒤에 붙인 다음, 그 바로 아래에 이런 문장이 옵니다.

"체크리스트를 거친다고 옳은 결론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도록 돕기 위한 것일 뿐이다." (19장)

이 책은 언제 무엇이 통하는지를 열아홉 장에 걸쳐 말합니다. 언제 통하지 않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 빈칸은 도구를 쓰는 사람이 채웁니다.


고지: 2026년 9월 집필 · 책 인용은 1999년 개정판 기준 · 국내 사례는 지수 종가와 보도된 날짜만 옮겼고 종목명·전망·목표지수는 쓰지 않았습니다 ·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출처: 존 J. 머피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1999 개정판 19장·15장 · Osler·Chang, "Head and Shoulders: Not Just a Flaky Pattern", FRBNY Staff Report No. 4 (1995년 8월) 및 그 게재본 Chang·Osler, "Methodical Madness: Technical Analysis and the Irrationality of Exchange-rate Forecasts", The Economic Journal 109(458), 1999년 10월 · Neely·Weller, "Technical Analysis in the Foreign Exchange Market", FRB St. Louis Working Paper 2011-001B · 국내 사례는 파이낸셜뉴스·서울경제·이데일리·머니투데이·한국경제 2026년 6~7월 보도 교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