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EO 서재책 한 권을, 끝까지 함께 읽습니다

그 도구를 만든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신문이었습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차트는 손으로 그렸습니다

1930년대 신문사의 아침. 나무 카운터 위에 묶인 신문 뭉치가 쌓여 있다
차트는 오래 손으로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값을 그림으로 옮기려면 먼저 숫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어딘가에서 와야 하고요.

전산 시세가 없던 시절, 차트를 그리는 사람이 숫자를 얻는 곳은 신문이었습니다. 아침에 배달된 종이를 펴서 시세면을 찾고, 필요한 값을 모눈종이에 옮겨 적었어요.

어떤 차트 방식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왜 그런 모양이 됐는지까지 적어 둔 장이 있습니다. 1999년 개정판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존 J. 머피가 차트 읽는 법을 열아홉 장으로 묶은 책입니다.

그 설명이 뜻밖입니다.

왜 하필 그 두 숫자였는가

제도판 위에 놓인 손으로 자른 나무 템플릿과 그 옆의 컴퍼스와 자
도구의 모양은 그날 구할 수 있던 숫자가 정했습니다.

포인트 앤 피겨 차트라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하루의 값 중에서 가장 높았던 값과 가장 낮았던 값만 쓰고, 장이 열릴 때의 값도 닫힐 때의 값도 쓰지 않아요.

깔끔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하루의 폭을 재는 데 그 둘이면 충분하니까요. 이론적으로도 그럴듯한 근거를 붙일 수 있고요.

그런데 이 장이 적어 둔 이유는 그게 아닙니다.

"그래서 고가와 저가만 쓰기로 한 결정이 나왔는데, 그것들이 대부분의 금융 신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1장)

신문에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론이 그 둘을 고른 것이 아니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그 둘뿐이어서 그 둘로 만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방식이 그 뒤 수십 년 동안 「그 방식」으로 굳었고요.

이 책은 숫자가 왜 그 숫자인지 묻지 않습니다

한 번 굳으면 이유는 잘 다시 물어지지 않습니다. 이 책에도 그런 자리가 여럿 있어요.

값의 움직임을 파동으로 세는 이론이 한 장을 차지합니다. 랠프 넬슨 엘리엇이 1938년에 내놓고 1960년대까지 다듬은 것이고, 지금도 엘리엇 파동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쓰이죠.

하는 일은 이렇습니다. 값이 오르는 구간을 통째로 보지 않고, 그 안의 작은 오름과 되돌림으로 잘게 나눠 번호를 붙여요. 지금이 몇 번째인지를 알면 앞으로 몇 개가 더 남았는지도 안다는 발상입니다. 그리고 그 번호가 다 차면 큰 흐름이 뒤집힌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번호가 언제 다 찼는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 장이 적어 둔 단서를 보면 판정이 늘 조건부예요. 다 셌는데도 그것이 더 큰 흐름의 한 조각일 뿐이고 아직 더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되돌리는 구간은 정의가 특히 흐려서 알아보기 어렵다고 적혀 있고요.

그리고 시장을 옮기면 셈의 규칙 자체가 달라진다고 이 장은 적습니다. 주식에서 세던 방식이 선물에서는 그대로 맞지 않는다는 거예요. 같은 이론인데 대상에 따라 세는 법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이 글은 이 이론을 배우려는 사람을 위한 글이 아닙니다. 실제로 어떻게 세는지, 되돌림을 어느 비율로 재는지는 원서에 있고 여기 옮기지 않아요. 여기서 볼 것은 하나뿐입니다. 그 숫자가 왜 그 숫자인가.

이 이론의 바탕에는 피보나치 수열이 깔려 있습니다. 앞의 두 수를 더해 다음 수를 만드는 그 수열이요. 해바라기 씨앗 배열이나 앵무조개 껍데기에서 발견된다고 자주 이야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 시장의 값이 그 수열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 장도, 앞선 다른 장도 답하지 않습니다. 잘 맞아떨어지는 듯하다는 관찰이 있고, 그 관찰 위에 이론이 올라갑니다.

셈에 쓰는 숫자를 묻지 않는 태도는 다른 장에서도 반복됩니다. 시장이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오르내린다고 보고 그 간격을 찾아 쓰는 방식이 있는데, 이걸 주기 분석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도 어떤 길이의 간격을 쓸지가 먼저 정해져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장은 스스로 이렇게 적습니다. 지금 어느 주기가 지배적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이 접근의 주된 문제라고요.

2003년에는 되고 2008년에는 안 됐습니다

숫자가 그때 있던 것에서 나왔다면, 있는 것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그걸 아주 좁은 구간에서 확인한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파운드와 달러의 환율을, 거래가 이뤄진 기록 하나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는 자료로 들여다본 것이에요.

연구자들은 규칙을 사람이 정하지 않고 기계에게 찾게 했습니다. 유전 알고리즘이라고 부르는 방식인데, 규칙 후보를 잔뜩 만들어 성적이 좋은 것만 남기고 그것들을 서로 섞어 다음 세대를 만드는 일을 반복해요. 생물의 교배와 선택을 흉내 낸 겁니다. 그렇게 찾아낸 규칙을 2003년 구간에 걸었더니, 거래비용을 다 빼고도 수익이 남았습니다.

같은 방식을 2008년 구간에 걸었더니 그 수익이 사라졌어요.

연구자들이 원인으로 든 것은 그 5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주문을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내는 비중이 급격히 늘었다는 것.

다만 2008년은 금융위기의 해이기도 했습니다. 원인을 하나로 좁히기는 어렵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 연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찾은 규칙이 5년 만에 통하지 않게 됐다는 것.

같은 시장, 같은 통화,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바뀐 것은 그 시장에 누가 있는가였고요.

같은 연구자들이 함께 정리한 다른 연구에도 비슷한 관찰이 있습니다. 주요 통화에서는 흐름이 예전만큼 믿을 만하게 이어지지 않는데, 거래가 이제 막 활발해진 통화에서는 여전히 기회가 보인다는 것. 도구가 죽은 것이 아니라 도구가 통하던 조건이 옮겨 간 겁니다.

이 연구가 이 책과 같지 않은 지점은 분명합니다. 저쪽은 몇 초 단위의 자료를 다루는 아주 짧은 시간축이고, 이 책의 도구는 대부분 하루 이상을 봅니다. 다만 두 경우에 묻는 것은 같아요. 이 규칙이 통하던 조건이 지금도 그대로인가.

축에서 지워진 시간

고가와 저가만 쓰는 그 차트로 잠깐 돌아가 보겠습니다. 거기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어요. 가로축에 시간이 없습니다.

값이 움직이지 않는 날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사흘을 가만히 있으면 그 사흘은 차트에서 통째로 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값이 어디에서 오래 머물렀는가」는 아주 선명해지고, 「그게 언제였는가」는 볼 수 없게 됩니다.

"이 접근의 주된 문제는 특정 시점에 지배적 주기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 접근의 주된 문제는 특정 시점에 지배적 주기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14장)

도구를 바꿔도 같은 모양의 빈칸이 남습니다. 어떤 주기를 쓸지는 지금 어느 주기가 지배적인지가 정하는데, 그것을 알아내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숫자는 두 종류의 이유를 갖습니다. 하나는 그때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잘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기 때문이에요. 둘 다 이유이긴 합니다. 다만 둘 다 지금도 그런가를 다시 물어야 하는 종류의 이유입니다.

신문에서 구할 수 있던 것이 도구의 모양을 정했다면, 지금 구할 수 있는 것도 지금 쓰는 도구의 모양을 정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그건 한참 지난 뒤에야 누군가 적어 두겠죠.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앞 세대의 제약이 굳어서 남은 자국뿐입니다.


고지: 2026년 9월 집필 · 인용은 1999년 개정판 기준 · 파동 셈의 규칙과 비율 수치, 주기 길이는 원서에 있습니다 ·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출처: 존 J. 머피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1999 개정판 11·13·14장 / Christopher J. Neely · Paul A. Weller, "Technical Analysis in the Foreign Exchange Market",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Working Paper 2011-001B (2011) — Kozhan & Salmon(2010) 및 Pukthuanthong-Le 외(2007·2008) 정리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