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 한 줄이 그 뒤 23년 동안 본문이었습니다
1999년, 한 줄로 꿰인 네 시장

책 한 권에 시장 네 개를 한 줄로 꿴 지도가 있습니다.
그 책이 존 J. 머피가 1999년에 낸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입니다. 열아홉 장 가운데 열여섯 장이 차트 읽는 법인데, 열일곱 번째 장에서는 방법이 아니라 지도를 그립니다.
"실상은 네 시장이 전부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달러가 상품에 영향을 주고, 상품이 채권에 영향을 주고, 채권이 주식에 영향을 준다. 어느 한 자산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온전히 이해하려면 나머지 셋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17장)
원자재는 달러로 값이 매겨지니, 달러가 비싸지면 같은 물건에 붙는 값은 내려갑니다. 원자재 값이 눌리면 물가가 오를 걱정이 줄어듭니다. 채권은 정해진 이자를 주는 증서라 시장 금리가 내려가야 값이 오르는데, 물가 걱정이 줄면 금리도 따라 내려가니 채권 값이 오릅니다. 금리가 내려가면 기업이 돈을 빌리는 값도 싸지니 주식에는 좋은 소식이고요. 네 시장이 이렇게 한 줄로 늘어섭니다.
지도를 다 그린 뒤에 그는, 네 시장의 가격 화면을 나란히 띄워 놓고 서로 견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덧붙입니다.
채권이 흔들리면 주식 수백 종목이 한 덩어리로 움직였습니다
채권 선물 쪽에서 값이 크게 흔들리면 몇 분 뒤 주식 수백 종목이 한 덩어리로 팔려 나갑니다. 그 사이에 계약 하나가 끼어 있습니다.
주가지수 선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수를 정해진 날에 정해진 값으로 주고받기로 미리 맺는 계약인데, 그 계약 자체가 따로 시장에서 사고팔립니다. 같은 지수에 값이 두 개 붙어 있는 셈입니다. 하나는 실제 주식 수백 종목을 다 더한 값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계약의 값입니다.
둘은 붙어 다니다가 가끔 벌어집니다. 벌어지면 그 차이를 먹으려는 주문이 자동으로 나가는데, 이것을 프로그램 트레이딩이라고 부릅니다. 비싼 쪽을 팔고 싼 쪽을 사는 주문이라, 비싼 쪽이 실제 주식이면 수백 종목이 한 덩어리로 한꺼번에 시장에 나옵니다. 현물 지수가 밀려 내려갑니다. 반대 방향으로 벌어지면 같은 덩어리를 한꺼번에 사들입니다.
그런데 그 계약이 왜 갑자기 벌어졌는지가 화면 밖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트레이더는 이 두 시장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주가지수 선물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채권 같은 다른 선물시장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까지는 늘 알지 못한다." (17장)
채권 쪽에서 시작된 흔들림이 주가지수 선물로 옮겨 붙고, 그 계약이 벌어지는 순간 주식 수백 종목이 한 덩어리로 움직입니다. 화면 앞에 앉은 사람이 보는 것은 마지막 고리 하나뿐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언제나 존재한다"
전제는 모든 시장이 어떻게든 이어져 있다는 것이고, 거기에 한 문장이 더 붙습니다.
"그 관계들은 이따금 옮겨 갈 수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언제나 존재한다." (17장)
옮겨 가도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문장이 틀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틀릴 수 없는 문장은 관찰이 아니라 보험입니다. 시장이 어느 쪽으로 가든 이 문장만은 지켜지니까요.
본문은 확언이었고, 예외는 각주에 있었습니다

지도의 마지막 화살표, 채권에서 주식으로 건너가는 그 자리에 각주가 하나 달려 있습니다.
"디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채권과 주식이 대개 분리된다. 채권 값은 오르고 주가는 내린다." (17장 각주)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르지 않고 오히려 내려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 국면에서는 화살표가 끊긴다는 뜻입니다. 본문은 이 관계를 딱 잘라 말해 놓고, 그것이 통하지 않는 조건은 쪽 아래 작은 글씨 한 줄에 내려놓습니다.
두 값이 같이 오르내리면 양, 한쪽이 오를 때 다른 쪽이 내리면 음이라고 부릅니다. 각주가 말한 것은 그 부호가 뒤집히는 국면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호는 개정판이 나오기 한 해 전에 뒤집혔습니다.
2021년에 나온 전미경제연구소 워킹페이퍼가 미국 주식과 물가연동 국채의 수익률 상관을 재고, 그 값이 1998년에 양에서 음으로 부호를 바꿨다고 적습니다. 물가연동 국채는 원금과 이자가 물가에 따라 조정되는 국채입니다. 물가가 오른 만큼은 원금 쪽에서 이미 보상되니, 물가 요인을 빼고 남는 움직임만 값에 드러납니다.
다만 전환의 이유로 든 것은 각주가 말한 디플레이션이 아닙니다. 각주는 조건 하나와 결과 하나를 함께 적었습니다. 그 조건 때문이 아닌데도, 채권과 주식이 갈라진다는 결과 쪽은 이미 와 있었습니다.
각주로 내려간 예외는, 그 각주가 인쇄되기 한 해 전에 이미 규칙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쪽인가
부호는 한 번 더 뒤집혔습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함께 세운 기관인 국제결제은행이 2023년 12월 분기보고서에 실은 글은 미국 주식과 국채 수익률의 상관이 2021년 중반에 다시 부호를 바꿨다고 적습니다. 이번에는 음에서 양으로, 그러니까 1998년 이전으로 돌아간 방향입니다. 이쪽은 보통의 국채를 기준으로 잰 값이라 앞의 논문과 재는 대상이 다릅니다. 두 값을 한 줄로 이어 그릴 수는 없고, 각각 따로 찍힌 두 점입니다.
같은 글에 이런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이런 지속적인 양의 상관 국면을 찾으려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국제결제은행 분기보고서, 2023년 12월)
이 보고서 하나만으로도 1990년대 초부터 2021년 중반까지는 양의 국면이 아니었다는 말이 됩니다. 앞의 논문은 그 구간이 시작된 해를 1998년으로 좁혀 찍을 뿐입니다.
성장 소식은 주식과 채권을 반대쪽으로 밀고, 물가 소식은 둘을 같은 쪽으로 몰아갑니다. 물가가 조용하면 성장 소식이, 시끄러우면 물가 소식이 이긴다는 것이 그 글이 드는 설명입니다. 주식과 채권을 같이 들고 있으면 한쪽이 빠질 때 다른 쪽이 받쳐 주던 효과가 그만큼 약해진다는 말도 붙어 있습니다.
지금 화살표는 1998년 이전과 같은 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부호가 두 번 뒤집혔고, 두 점 사이가 23년입니다.
23년짜리 각주
관계가 끊어진 것이 아닙니다. 채권과 주식은 1998년 이후로도 계속 서로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다만 한쪽이 오르면 다른 쪽이 내리는 쪽으로 따라갔을 뿐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언제나 존재한다" 는 문장은 이 23년 동안에도 참이었습니다. 참인 채로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화살표가 그 자리에 있느냐를 묻는다면 답은 늘 예이고, 어느 쪽을 가리키느냐를 묻는 순간 이 전제는 답할 것이 없어집니다.
저자가 예외를 몰랐던 것도 아닙니다. 알고 적어서 각주에 두었습니다.
고지: 2026년 9월 집필 · 책 인용은 1999년 개정판 기준 · 상관 수치의 산출 방법과 표본 구간은 각 원 보고서에 있습니다 ·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출처: 존 J. 머피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1999 개정판 17장(저자가 1991년에 낸 《Intermarket Technical Analysis》를 한 장으로 줄인 것이다) · Chernov·Lochstoer·Song, "The Real Channel for Nominal Bond-Stock Puzzles", NBER Working Paper 29085 (2021년 7월) · Lombardi·Sushko, "The correlation of equity and bond returns", BIS Quarterly Review (2023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