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EO 서재책 한 권을, 끝까지 함께 읽습니다

두 도구가 서로의 실패 조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도구를 두 종류로 줍니다

작업대 위에 놓인 오래된 황동 계측기 두 개. 서로를 향하도록 비스듬히 놓여 있다
두 도구는 서로가 실패하는 자리를 가리킵니다.

이 두 도구를 나란히 놓은 책이 존 J. 머피의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입니다. 1999년 개정판, 차트 읽는 법만 열아홉 장이에요.

그 안의 도구를 크게 나누면 둘입니다.

하나는 지난 며칠 또는 몇 달치 값을 평균 내 선으로 긋는 방식입니다. 하루하루의 오르내림이 뭉개지고 큰 방향만 남아요. 값이 그 선 위로 올라오면 사고 아래로 내려가면 파는 식으로 씁니다.

다른 하나는 값이 최근에 얼마나 빠르게 움직였는지를 눈금 위에 올려 보는 방식입니다. 눈금의 위쪽 끝에 붙으면 너무 올랐다고 보고, 아래쪽 끝에 붙으면 너무 내렸다고 봅니다.

두 도구는 정반대의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앞의 것은 가던 쪽으로 계속 가라고 하고, 뒤의 것은 너무 갔으니 돌아올 때가 됐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둘을 언제 쓰는지도 함께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목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이동평균 기법에 너무 크게 의존하는 것이 위험한 아주 설득력 있는 이유다"

앞의 도구를 다루는 장은 그것이 흐름이 뚜렷할 때 가장 잘 통한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이 이렇게 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상당 기간 동안 그렇게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동평균 기법에 너무 크게 의존하는 것이 위험한 아주 설득력 있는 이유다." (9장)

「위험」이라는 낱말입니다. 자기가 스무 쪽 넘게 설명한 도구에 대해서요.

값이 옆으로만 오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값이 그 선을 몇 번이고 오르내리며 넘나들고, 그때마다 신호가 나옵니다. 샀다가 팔고 다시 샀다가 파는 동안 조금씩 깎이는 거예요.

고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선을 더 민감하게 만들면 되죠. 그런데 그러면 흐름이 뚜렷할 때 헛신호가 늘어납니다. 둔하게 만들면 헛신호는 줄지만 흐름을 한참 지나서야 알아챕니다.

"거래범위 시장에서 더 빠른 이동평균을 쓰면 더 자주 휩소를 당하고, 시장이 추세를 낼 때 더 느린 평균을 쓰면 시장에서 너무 멀리 뒤처진다." (9장)

어느 쪽으로 맞춰도 다른 쪽이 나빠집니다.

서로를 가리키는 두 문장

앞의 도구를 다루는 장은 마지막에 다음 장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오실레이터는 가격이 수평 가격대, 즉 거래범위 안에서 오르내리는 무추세 시장에서 극도로 유용한데, 그런 시장 상황은 대부분의 추세추종 시스템이 그냥 잘 통하지 않는 자리다." (9장)

인용문의 「오실레이터」가 눈금을 쓰는 그 도구입니다. 깔끔한 배분이에요. 흐름이 뚜렷하면 앞의 도구, 옆으로 오가면 뒤의 도구.

그런데 뒤의 도구를 다루는 장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위든 아래든 어떤 강한 추세도 대개 오래지 않아 극단적인 값을 만든다. 그런 경우 시장이 과매수 또는 과매도라는 주장은 대개 성급하며, 수익 나는 추세에서 일찍 나오게 만들 수 있다." (10장)

두 문장을 나란히 놓아 보면 이렇게 됩니다.

앞의 도구는 옆으로 오갈 때 실패하고, 뒤의 도구는 흐름이 뚜렷할 때 실패합니다. 그래서 어느 것을 쓸지는 지금이 어느 쪽인지가 정합니다.

그러면 지금이 어느 쪽인지는 무엇이 정하나요.

두 장을 다 읽어도 그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이 두 장만의 사정이 아니에요. 흐름이 뚜렷한 때와 그렇지 않은 때를 나누라는 지시는 이 책의 여러 장에 흩어져 있는데, 나누는 방법을 적은 자리가 없어서 그 지시들이 전부 같은 곳에서 멈춥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정하는가

눈금을 쓰는 도구 중에는 위아래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부터가 너무 높은 값인지를 따로 정해야 해요. 이 장은 그 물음을 스스로 던지고 이렇게 답합니다.

"이 문제를 푸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10장)

눈으로 살펴본 값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이 답은 답이 아니라 빈칸을 확인해 준 셈입니다.

2020년, 네 연구자가 그 빈칸을 통계로 메워 보려 했습니다

흐름이 있는지 없는지를 사람이 아니라 자료가 말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걸 정면으로 검정한 논문이 있습니다.

선물 55종에 대해, 지난 12개월 동안 오른 것이 다음 한 달에도 오르는지를 하나씩 따져 봤어요.

이런 검정에는 점수가 하나 붙습니다. 관계가 얼마나 뚜렷한지를 재는 값인데, 관계가 없으면 0 근처에 머물고 뚜렷할수록 커져요. 그 점수가 어느 선을 넘으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정합니다. 교과서가 흔히 쓰는 선은 2 언저리인데, 자료가 넉넉할 때 우연만으로 그만큼 나올 확률이 20번에 한 번 아래로 떨어지는 지점이라 관례로 굳은 값이에요.

개별로 보면 55개 중 8개만 그 선을 넘었습니다. 나머지 47개는 아래였어요.

그런데 55개를 전부 한 덩어리로 묶어서 재면 점수가 4.34로 올라갑니다. 2를 크게 넘는 값이죠.

여기서 연구자들이 한 일이 이 논문의 요점입니다. 점수가 아니라 선을 다시 계산했어요.

교과서의 2라는 선은 대상들이 서로 무관할 때 성립합니다. 그런데 이 55개는 무관하지 않아요. 같은 해에 같은 금리와 같은 경기를 함께 겪으니까요. 서로 닮은 것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재면 점수가 실제보다 부풀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자료로 직접 선을 만들었습니다. 값을 수천 번 뒤섞어 관계를 일부러 없앤 다음, 그래도 우연만으로 점수가 얼마까지 올라가는지를 세어 본 거예요. 그렇게 나온 선은 12.53이었습니다.

4.34는 그 아래입니다.

연구에 쓴 기간 바깥의 자료로 다시 재도 마찬가지였어요. 55개 중 45개가 예측력이 없는 쪽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논문의 마지막 관찰이 남습니다. 이 전략은 돈을 법니다. 다만 그 성과가 과거 평균이 양수이면 사는 전략과 「사실상 같았다」고 적혀 있어요. 뒤쪽 전략은 앞으로를 전혀 예측하지 않습니다. 번 돈이 예측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연구가 이 책과 같지 않은 지점은 분명합니다. 검정한 것은 12개월 수익률로 다음 한 달을 보는 특정한 한 형태이지 이 책의 도구 전부가 아니에요. 다만 그 형태가 「지금 흐름이 있는가」를 자료로 판정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 칸은 비어 있습니다

도서관의 카드 색인 서랍이 열려 있고 카드는 모두 빠져 있다. 한 자리만 비어 있다
도구는 스무 가지가 넘는데, 어느 것을 쓸지 정하는 자리가 없습니다.

이 책에는 도구가 스무 가지 넘게 들어 있습니다. 각각의 전제도, 각각이 언제 실패하는지도 적혀 있고요. 숨긴 것이 없어요.

비어 있는 것은 도구가 아니라 그 앞의 칸입니다. 지금이 어느 국면인지를 정하는 칸이요. 그 칸은 다른 도구로 채울 수 없습니다. 어느 도구를 쓸지가 바로 그 칸에 달려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책의 답은 결국 「눈으로 살펴보라」가 됩니다. 정직한 답이고, 동시에 이 책이 팔고 있는 것이 방법이 아니라 감각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빈칸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바로 옆에 실패를 누구에게 돌릴지를 적어 두거든요. 실패는 시스템에 있지 않고, 흐름 없는 시장에 흐름용 도구를 가져다 쓴 사람에게 있다고요. 판정 방법을 주지 않은 채 판정 책임만 넘긴 셈입니다.


고지: 2026년 8월 집필 · 인용은 1999년 개정판 기준 · 구체적인 기간 설정값과 눈금 기준값은 원서에 있습니다 ·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출처: 존 J. 머피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1999 개정판 9·10장 / Dashan Huang · Jiangyuan Li · Liyao Wang · Guofu Zhou, "Time series momentum: Is it there?",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135(3), 774–794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