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문장 위에 서 있는 책, 그중 하나는 종류가 다릅니다
기초를 첫 문단에 꺼내 놓은 책입니다

대부분의 책은 자기가 무엇 위에 서 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읽는 사람이 알아서 짐작해야 해요.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은 존 J. 머피가 1999년에 낸 개정판입니다. 차트로 시장을 읽는 방법을 열아홉 장에 걸쳐 정리했고, 그 뒤로 오래 이 분야의 교과서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첫 장 첫 문단부터 자기 바닥이 나옵니다. 세 문장이에요.
시장은 모든 것을 할인한다. 가격은 추세로 움직인다. 역사는 반복된다.
나머지 오백 쪽이 전부 이 세 문장 위에 올라갑니다. 도구도, 그림도, 판정도요.
읽으면 셋 다 비슷한 무게로 들립니다. 그런데 세 문장이 하는 일은 같지 않아요.
앞의 두 문장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첫 문장은 적어도 경험적으로 따져볼 수 있는 주장입니다. 값에 영향을 주는 것이 결국 값 안으로 들어온다면, 값만 들여다봐도 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차트를 보는 사람은 왜 올랐는지 왜 내렸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차트가 시장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차트는 시장의 심리를 비출 뿐이니까요.
값이 정보를 얼마나 빨리 반영하는지는 재면 됩니다. 실제로 학계가 오랫동안 재 왔고요.
두 번째 문장도 자료와 대조할 자리가 있습니다. 가격이 추세로 움직인다는 말에는 딸려 나오는 결론이 하나 있어요. 움직이고 있는 추세는 뒤집히기보다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움직이던 것은 계속 움직이려 한다는 뉴턴의 첫 번째 법칙을, 시장에 그대로 옮겨 놓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문장을 적어 놓고, 바로 그 자리에서 스스로 이렇게 덧붙이거든요.
"이것 역시 거의 순환논법처럼 보이는 기술적 주장 중 하나다. 그러나 추세추종 접근 전체가, 기존 추세가 뒤집힐 조짐을 보일 때까지 올라타 있는 것에 기대고 있다." (1장)
자기 논리가 동그랗게 돌고 있다는 걸 알면서 쓴 겁니다. 그리고 알면서도 쓴 이유까지 같은 문장에 적어 놨어요. 이 방법 전체가 그것 위에 서 있으니까.
여기까지는 정직합니다. 앞의 두 문장은 검증 가능한 자리에 서 있고, 하나는 스스로 약점까지 표시해 두었어요.
"이 패턴들이 과거에 잘 통했으므로 앞으로도 잘 통하리라고 가정한다"
세 번째 문장은 다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 이 말이 실제로 뜻하는 바가 1장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이 패턴들이 과거에 잘 통했으므로 앞으로도 잘 통하리라고 가정한다." (1장)
문장 안에 답이 들어 있어요. 가정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물론 가정 없이 시작하는 방법론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가정에는 나름의 근거도 붙어 있어요. 패턴이 사람 심리를 그린 것이고 사람 심리는 변하지 않으니, 그림도 계속 통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앞의 두 문장은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해 줄 자리를 잡기가 비교적 쉬운데, 세 번째는 그 자리를 어디에 둘지가 훨씬 흐립니다. 값의 움직임에 규칙 같은 것은 없다고 보는 이론이 있는데, 거기에 답하는 대목을 보면 그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많은 학자가 이 패턴들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1장)
이 문장 자체는 참입니다. 못 찾았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다른 말이니까요.
그런데 이 문장을 방어선으로 쓰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찾은 사람이 없어도 명제는 살아남고, 앞으로 못 찾아도 계속 살아남아요. 반박하려면 「없다」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건 모든 경우를 다 뒤져 봤다는 뜻이 됩니다. 반박하는 쪽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는 거예요.
같은 장에 비유가 하나 더 나옵니다. 심전도 출력은 문외한에게 잡음으로 보이지만 훈련받은 사람에게는 뜻이 있다는 것. 좋은 비유입니다. 다만 이 비유는 심전도에 규칙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 때만 성립해요. 그리고 지금 다투고 있는 것이 바로 그 규칙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소수파에 있는 즐거움
1장 어딘가에, 논증과 아무 상관없는 문장이 하나 끼어 있습니다.
차트를 보는 사람은 소수파에 있는 것을 즐기게 된다는 겁니다. 값이 왜 움직였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다들 알게 될 텐데, 그 확인을 기다릴 생각이 없다는 뜻이에요.
이 문장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책을 쓴 사람이 어떤 기질인지는 한 줄로 보여줍니다.
2004년과 2007년, 같은 두 사람이 같은 문헌을 두 번 세었습니다

세 번째 문장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가정도 잴 수는 있어요. 실제로 잰 사람들이 있습니다.
2004년, 일리노이대학교의 두 연구자가 기술적 매매를 다룬 연구를 전부 모아 세었습니다. 현대적인 검정 절차를 쓴 것이 92편이었고, 그중 58편이 긍정, 24편이 부정, 10편이 혼재였어요.
3년 뒤 같은 두 사람이 같은 작업을 학술지에 다시 실었습니다. 이번에는 95편이었고, 긍정 56편, 부정 20편, 혼재 19편이었어요. 세 편이 늘어난 사이에 혼재가 10편에서 19편으로 거의 두 배가 됐습니다.
세는 사람이 같고 대상도 거의 같은데 결과가 달라진 겁니다. 어느 쪽이 맞느냐를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3년 사이에 새 연구가 들어왔고, 무엇을 긍정으로 볼지에 대한 판단이 조금 움직인 겁니다. 세는 일에도 사람이 들어간다는 뜻이죠.
그리고 두 판본이 똑같이 적어 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기술적 매매 전략이 여러 시장에서 꾸준히 이익을 냈다는 것. 다만 그 문장에는 적어도 1990년대 초까지는이라는 꼬리가 달려 있어요.
두 사람은 그 뒤 문단에서 유보도 함께 적어 둡니다. 대부분의 실증 연구가 검정 절차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고요. 여러 규칙을 돌려 보고 잘 되는 것을 고르는 일, 위험과 거래비용을 제대로 넣지 못하는 일 같은 것들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는 게 좋겠습니다. 이 집계는 일이 다 끝난 뒤에 뒤를 돌아본 것이고, 이 책은 앞을 보고 쓴 안내서예요. 같은 자리에 놓고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세 문장 중 하나는 관찰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이었고, 그 사실이 문장 안에 이미 적혀 있었어요.
가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정에는 유효기간이 붙습니다. 그리고 유효기간은 대개 지나간 뒤에야 보이죠.
1999년 개정판이 나올 때, 저 세 문장은 그대로였습니다. 초판에서 옮겨 온 그 자리에요.
그런데 이 책은 유효기간보다 앞에서 걸리는 문제를 하나 더 적어 두었습니다. 방향을 맞히고도 들어간 시점이 어긋나서 돈을 잃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고지: 2026년 8월 집필 · 인용은 1999년 개정판 기준 · 구체적인 지표 설정값과 작도 절차는 원서에 있습니다 ·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출처: 존 J. 머피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1999 개정판 1장 / Park & Irwin, AgMAS Project Research Report 2004-04 · Journal of Economic Surveys 21(4), 786–826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