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맞히고도 3년 3개월을 틀릴 수 있습니다
1996년 12월 5일 저녁, 워싱턴

한 연구소 만찬에서 당시 미국 중앙은행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이 연설을 합니다. 통화정책과 민주주의를 다룬 원고였고, 중간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그러나 비이성적 과열이 자산 가치를 부당하게 부풀렸고, 그것이 지난 십 년 동안 일본에서 그랬듯 예상치 못한 장기 수축의 대상이 될 때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996년 12월 5일 연설)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입니다. 팔라는 말도, 지금이 과열이라는 말도 아니에요.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은 겁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그날 이후 경고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경고로 읽으면, 그건 맞은 말이 됐어요. 그날 나스닥 종합지수 종가는 1,300.12였습니다.
그 뒤로 1,191일 동안 값은 올랐습니다

3년 3개월입니다.
2000년 3월 10일, 나스닥 종합지수는 5,048.62로 마감합니다. 사상 최고치였고, 그 연설이 있던 날의 3.88배였어요.
훗날 돌아보면 그때의 우려는 과열을 잘 짚은 것처럼 보입니다. 지수는 거기서 방향을 틀어 2002년 10월 9일 1,114.11까지 내려갑니다. 연설이 있던 날보다 14퍼센트 낮은 값이에요.
그러니까 방향은 결국 그쪽이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값으로 확인되기까지 5년 10개월이 걸렸고, 그 사이에 값은 거의 네 배가 됐다가 돌아왔습니다. 2000년의 고점을 다시 넘어선 것은 2015년 4월 23일이고요.
방향을 맞히는 것과 그 방향으로 돈을 버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도구마다 할 수 있는 일이 다릅니다
방금의 문제를 첫 장에서 이미 다룬 책이 있습니다. 존 J. 머피가 1999년에 낸 개정판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차트 읽는 법을 열아홉 장으로 정리한 책이에요.
"시장의 전반적인 추세를 맞히고도 돈을 잃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1장)
선물을 두고 한 말입니다. 계약 값의 10퍼센트 남짓만 맡기고 그 열 배를 굴리는 구조라, 값이 10퍼센트만 반대로 가도 맡긴 돈이 다 없어지고 자리에서 밀려나거든요. 주식이라면 틀린 쪽에 서 있어도 버티기로 할 수 있지만, 그쪽에는 그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구가 두 종류로 나뉩니다. 방향을 보는 도구와 시점을 잡는 도구요. 몇 해를 담는 긴 차트가 앞쪽이고, 하루 단위의 차트가 뒤쪽입니다.
8장에서 경계가 분명하게 그어집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진입·청산 시점을 잡는 데는 적합하지 않으며 그 목적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 (8장)
긴 차트 이야기입니다. 방향은 거기서 보되, 언제 들어갈지는 거기서 정하지 말라는 것.
이렇게 못박은 자리는 이 책에 흔치 않습니다. 대개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는 쪽이거든요. 그런데 바로 다음 쪽에 이런 문장이 붙습니다.
"일간 차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주간·월간 차트에서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 두라." (8장)
방금 그은 경계를 스스로 다시 흐리는 문장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리해 주지 않고요.
그 긴 선은 실제로 거래된 값인가
몇 해를 담는 선물 차트에는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선물 계약은 1년 반쯤 살다 만기가 되거든요. 그래서 긴 차트는 계약을 이어 붙여 만듭니다.
이어 붙이는 자리마다 값이 튀는데, 그걸 매끄럽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가 두 계약의 값을 가중평균하는 겁니다. 그렇게 나온 값은 실제로 거래된 적이 없어요. 8장은 그 점을 그대로 적어 둡니다.
"근시적 그림만 가지고 시작하면 결론을 끊임없이 수정할 수밖에 없다"
8장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순서입니다. 긴 것부터 보고 짧은 쪽으로 내려오라는 것.
짧은 쪽부터 보면 결론이 계속 바뀝니다. 더 긴 그림을 나중에 보게 되면 앞서 내린 판단을 통째로 다시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시간축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같은 가격이라도 어떤 그림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화면이 달라져요. 종가만 이어 그리면 그날 안에서 얼마나 오르내렸는지는 사라집니다. 어느 시간축을 골랐는지, 어느 그림으로 그렸는지가 이미 답의 절반을 정해 놓는 셈이에요.
맞힌 사람에게 남은 시간
방향과 시점은 다른 문제입니다. 답은 도구를 나누는 것이었어요. 긴 차트로 방향을 보고, 짧은 차트로 시점을 잡는 것.
그런데 1996년 12월의 그 물음에는 이 답이 잘 듣지 않습니다. 진단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해 준 것이 결국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5년 10개월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앞의 3년 3개월 동안에는, 어느 시간축에서 봐도 값이 오르고 있었고요.
방향을 정하려면 추세가 바뀌었다는 판정이 먼저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 판정의 기준을 이 책은 「이후의 시장 움직임이 증명한다」고 적어 둡니다. 판정을 확인해 줄 자료가 결정을 내린 다음에 온다는 뜻이에요.
고지: 2026년 8월 집필 · 인용은 1999년 개정판 기준 · 지수는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FRED 원자료(NASDAQCOM) 기준 · 구체적인 작도 절차와 지표 설정값은 원서에 있습니다 ·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출처: 존 J. 머피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1999 개정판 1·3·8장 / 앨런 그린스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앙은행의 도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1996-12-05 / FRED, NASDAQCOM (2026-08-31 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