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EO 서재책 한 권을, 끝까지 함께 읽습니다

800명이 일하는데 매매 플로어가 조용했습니다

매매 플로어가 조용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의 큰 옵션 매매 플로어. 수백 명이 줄지어 앉아 있고 서서 소리치는 사람은 없다
800명이 일하는 회사였습니다.

조 리치가 세운 회사의 매매 플로어는 조용했습니다.

잭 슈웨거는 1992년에 낸 인터뷰집 《새로운 시장의 마법사들》을 쓰면서 시카고의 그 회사를 둘러봤어요. 시카고 리서치 앤드 트레이딩, 줄여서 CRT라고 불리는 옵션 매매 회사입니다. 조 리치는 열다섯 해 전만 해도 형의 도매용 양복을 빌려야 거래소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빈털터리였던 창업자예요. 작업 공간은 매력적이고 편안해 보였는데, 무언가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그림 퍼즐을 떠올렸다고 적어요. 이 그림에서 무엇이 잘못됐을까, 하는 설명이 붙은 그 퍼즐이요.

안내 데스크 앞을 지날 때 안내를 맡은 사람이 전화를 받으러 갔고, 그가 통화하는 동안 슈웨거는 마침내 그 정체를 알아차렸습니다. 매매 플로어가 조용했던 겁니다. 대학이나 법률사무소 사무실을 둘러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고 그는 씁니다. 매매 플로어에 보통 배어 있는 고함과 소란과 부산함과 불안과 스트레스와 환호와 욕설이 전부 빠져 있었어요.

그 조용한 회사에서 800명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시트와 수신호, 그리고 1초에서 2초

CRT는 홈런을 노리지 않는 회사였습니다. 시장의 작은 비효율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소박한 이익 기회를 대량으로 긁어내는 사업을 했어요. 한 거래소의 옵션이 다른 거래소의 등가 옵션보다 조금 비싸면 싼 쪽을 사고 비싼 쪽을 팔았고, 전 세계 19개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75개쯤 되는 시장을 끊임없이 추적했습니다.

플로어에 선 브로커는 회사 컴퓨터 모형이 만들어 낸 시트를 들고 있었습니다. 시장 가격이 어느 수준일 때 각 옵션에 얼마를 부르거나 제시할 수 있는지가 적힌 종이예요. 변동성이 큰 날에는 러너가 개정된 시트를 하루에 스무 번까지 날라다 줬습니다.

옵션 매매를 체결하면 그 즉시 등가의 반대 매매로 포지션을 상쇄했어요. 트레이더가 매매를 기입하자마자 15미터쯤 떨어진 선물 매매 구역 맨 위 계단에 서 있는 직원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내고, 1초에서 2초 안에 상쇄 주문이 나갑니다.

그러고 나면 그 포지션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관리 책임이 위층의 포지션 매니저에게 넘어가고, 그 사람의 일은 시시각각 변하는 회사 전체의 위험 노출을 가능한 한 0에 가깝게 유지하는 것이었어요. 회사는 위험 통제에 워낙 엄격해서 예비 위험관리 조직까지 뒀습니다.

2026년 7월 31일, 오른 날에 빌린 돈이 빠져나갔습니다

2026년 7월 31일 코스피 상승률과 같은 날 신용거래융자 잔액 감소를 좌우로 비교한 표
잔액이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왜 줄었는지에는 여러 경로가 있습니다.

그 구조가 무엇을 막아 주는 것인지는 회사 밖에서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2026년 7월 31일 코스피는 하루에 17.91퍼센트 올랐습니다. 비율로도 포인트로도 사상 최대 일간 상승이었고, 그 직전 사흘 동안은 서킷브레이커가 이틀 연속 걸린 채로 내리 빠지던 참이었어요.

같은 날 유가증권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2조 6,681억 원 줄었습니다. 금융투자협회 집계로 이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8년 7월 이후 가장 큰 감소폭입니다. 그 잔액은 불과 6주 전에 사상 최고를 찍었고요.

가장 크게 오른 날에, 빌린 돈이 사상 최대로 빠져나갔습니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빌린 돈을 갚거나 갚게 되면 줄어드는 숫자입니다. 그날 외국인은 7조 원대를 순매수했고 개인은 8조 원대를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여기서 「외국인」과 「개인」은 집계 범주이지 하나의 의도를 가진 주체가 아닙니다. 잔액이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왜 줄었는지에는 여러 경로가 있어요.

합리적인 판단이 왜 파산으로 끝났을까요

조 리치는 1979년과 1980년의 은 시장을 이야기하면서 예를 하나 듭니다. 텍사스의 헌트 형제가 은을 사 모아 값을 밀어 올리던 시기인데, 그때 아무 잘못 없는 쪽이 많이 다쳤다면서요.

생산 원가가 온스당 5달러 미만인 페루의 광산을 생각해 보라고 그는 말합니다. 가격이 15달러가 되면 그 광산은 앞으로 2년치 생산량을 선물시장에서 미리 팔아 이익을 잠그기로 결정해요. 경제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그런데 가격이 20달러, 25달러, 30달러, 35달러로 계속 올라가면 그들은 그 공매도 포지션을 유지하려고 증거금을 계속 더 넣어야 합니다. 값이 불리하게 갈수록 날마다 더 채워야 하는 돈이에요. 결국 돈이 떨어져 청산을 강요당하고, 그 과정에서 파산합니다.

판단이 틀려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옳다고 확인되는 날까지 그 판단을 들고 있을 자금이 모자라서 죽은 겁니다.

페루의 광산은 실물을 파는 회사였고, 서울의 신용거래융자는 개인 계좌에 걸린 빚입니다. 규모도 제도도 시대도 다릅니다. 겹치는 것은 버틸 수 있는 기간이 판단보다 먼저 끝난다는 자리 하나예요.

옮겨진 것은 판단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든 자리였습니다

CRT가 800명에게 옮긴 것은 시장을 읽는 감각이 아니었습니다. 시트가 값을 말해 주고, 체결하면 즉시 헤지가 나가고, 그다음부터는 위층이 위험을 본다는 배치였어요. 개인이 매 순간 옳을 필요가 없도록 미리 만들어 둔 자리입니다.

그 배치의 값어치를 한 전직 CRT 트레이더가 이렇게 설명합니다. 플로어에서 일하던 시절 그는 책임이 자기에게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서로 고함치는 장면을 자주 봤다고요. 브로커는 클럭을 탓하고, 클럭은 전화 저편의 사람을 탓하고, 전화의 사람은 고객을 탓합니다. CRT에서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고, 500계약짜리 주문이 매매 구역에 들어와도 자기 재량으로 즉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요. 경쟁사의 많은 트레이더는 50계약 넘는 일을 하려면 먼저 위층에 전화해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허락을 구하는 데 드는 시간이 곧 비용이었습니다. 그 비용을 없앤 회사가 1초에서 2초 안에 헤지를 끝냅니다.

그 회사에는 매매 플로어 한복판에 모든 직원이 쓰는 구내식당이 있었습니다. 음식이 전형적인 구내식당 음식이 아니라 집에서 만든 것이었고, 플로어에는 라운지 공간까지 있었어요. 정장과 넥타이도 없었습니다. 청바지와 스포츠 셔츠가 통상적인 복장이었어요.

"저는 기꺼이 말해 줍니다"

1970년대 중반 거래소 입구 계단. 젊은 남자가 몸에 크게 맞지 않는 양복의 소매를 만지고 있다
열다섯 해 전에는 형의 양복을 빌려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CRT의 성공이 어떤 비밀 컴퓨터 모형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조 리치는 말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잇습니다.

"CRT 성공의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저는 기꺼이 말해 줍니다. 그들이 저를 믿지 않을 것이고, 설령 믿는다 해도 같은 것을 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을 신뢰하고 절대적 통제를 포기하는 일 말입니다."

인쇄할 수 있는 것은 인쇄됐습니다

절차는 복사되지만, 절차를 믿는 조건은 복사되지 않습니다.

시트는 인쇄하면 되고 수신호는 배우면 됩니다. 위층에 위험을 넘기는 배치도 조직도로 그릴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배치가 실제로 돌아가려면 넘기는 쪽이 넘겨도 된다고 믿어야 하고, 받는 쪽이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을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조 리치가 훈련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 거기예요.

이 책이 CRT를 무척 호의적으로 그린다는 점은 밝혀 두겠습니다.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은 10억 달러에 육박한다는 추정치이고, 체결한 거래 규모 10조 달러는 조 리치 본인의 추산이며, 최초 창립 멤버 네 명 중 한 명은 회사를 떠났습니다. 함께 놓고 읽는 편이 낫습니다.

페루의 광산이 놓친 것은 은값 전망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셈해 볼 것이 있어요. 지금 들고 있는 판단이 옳은지 말고, 그 판단이 옳다고 확인될 때까지 틀린 채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달이든 주든 단위를 붙여 세어 보는 겁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 아니라 그냥 산수예요. 그리고 그 기간이 판단이 확인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짧게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CRT의 위층은 회사 전체의 노출을 늘 0에 가깝게 유지했습니다. 800명에게 나눠진 것은 시장을 보는 눈이 아니라, 틀린 채로도 버티게 해 주는 그 위험 관리였어요.


고지: 이 글은 2026년 8월에 쓰였고, 인용한 책은 1992년에 출간된 것입니다. 특정 종목이나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출처: Jack D. Schwager, 《The New Market Wizards》(1992), 16장·18장 / 코리아헤럴드·서울경제 영문판 2026-07-31 / 파이낸셜뉴스 2026-06-23·한국경제 2026-08-04(금융투자협회 집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