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EO 서재책 한 권을, 끝까지 함께 읽습니다

그는 가장 경험 없는 브로커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의견이 없는 사람을 일부러 찾아갔습니다

1982년 겨울 시카고 증권사 지점. 코트를 입은 남자가 카운터 앞에 서 있고 직원이 그를 향해 돌아선다
그가 물은 것은 책임자가 누구냐는 것이었습니다.

1982년 여름 어느 오후, 장이 닫힌 뒤에 한 남자가 은행에 들러 100만 달러짜리 자기앞수표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미시간가와 웨커가 모퉁이에 있는 증권사 지점 문을 열고 들어가 물었어요. 여기 책임자가 누구십니까.

지점장이 나오자 그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경험 없는 브로커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아무 의견도 없는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이 사람은 랜디 매케이입니다. 2,000달러로 시작해 20년 중 18년을 이익으로 마친 선물 트레이더예요. 잭 슈웨거는 1992년 인터뷰집 《새로운 시장의 마법사들》을 쓰면서, 매매 시간 중인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견이 있는 사람은 많고, 그중에는 좋은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 몇 달 전에 좋은 의견 때문에 돈을 잃고 있었습니다.

다우가 석 달 오르는 동안 그의 계좌는 내려갔습니다

그해에 그는 저녁 뉴스에서 다우 지수가 거의 매일 오르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선물 화면이 아닌 다른 데서 시장 감각이 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종목을 고르는 일은 남의 게임이라고 생각해서, 주식 브로커인 친구에게 계좌를 열고 폭넓게 사달라고 맡겼습니다.

친구에게는 이론이 있었습니다. 가장 약한 종목이 앞으로 가장 많이 오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친구는 자기가 10년 동안 사랑해온 세 종목을 사줬습니다.

매케이가 평생 해온 것은 정확히 반대였습니다. 그는 올라가고 있는 것을 삽니다.

다우가 석 달을 오르는 동안 계좌는 같이 내려갔습니다. 보유 종목의 차트를 보내달라고 해서 펼쳐보니 산 것이 죄다 저점 근처였어요.

틀린 이론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싸게 눌린 것을 사서 크게 번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은 매케이가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어요. 계좌가 내려갈 때 그는 견디지 못했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들고 있는 저점 매수는 저점 매수가 아닙니다.

그는 계좌를 닫았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부를 펼쳤죠.

천장을 짚는 일과 살코기만 먹는 일

1980년대 초, 그는 캐나다 달러를 85센트에서 팔기 시작해 70센트 아래까지 5년을 들고 갔습니다. 당시 캐나다 정부는 개입에 — 정부나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를 사서 환율을 떠받치는 일 말입니다 — 적극적이지 않았어요. 뻔한 자리에서 며칠 마지못해 받치다가 놓아버리곤 했습니다. 쉬운 움직임이었습니다.

그러다 67센트까지 내려간 시장이 어느 날 120포인트, 그러니까 1센트가 조금 넘게 높게 열렸습니다. 다음 날도 그만큼 높게 열렸고요. 이틀 연속으로, 하루에 100만 달러 넘게 이익이 줄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로이터에 총리의 말이 실렸습니다.

"우리는 시카고의 투기꾼들이 우리 통화의 가치를 결정하도록 두지 않겠습니다. 우리 통화는 견실하며, 노름꾼 무리 때문에 무너지도록 두지 않겠습니다."

정책이 바뀐 겁니다. 그는 그걸로 끝냈습니다. 매매가 쉬울 때 안에 있고 싶고 쉽지 않을 때 밖에 있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었어요. 그가 잡고 싶어 한 것은 움직임의 살코기, 그러니까 가운데입니다. 시작은 방향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어렵고, 끝은 사람들이 이익을 챙기느라 들쭉날쭉해서 어렵습니다.

왜 그는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만들어 뒀을까

의견 없는 사람을 찾아가고, 다친 자리에서 판단하지 않고, 잃는 동안 크기를 줄이는 세 단계를 세로로 이은 도해
규율이 강해서가 아니라, 규율이 필요 없게 배치했습니다.

바닥과 천장을 포기한 사람은 대신 무엇을 얻을까요. 판단을 덜 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1978년 11월, 주말에 발표된 카터 행정부의 달러 방어 대책이 밤사이 외환시장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독일 마르크와 영국 파운드를 크게 매수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발표 일주일 전에 포지션의 절반 넘게 정리해둔 상태였습니다. 나쁜 소식을 미리 안 게 아니라, 가격이 여전히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는 중인데도 상승이 가속되는 대신 감속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아침 선물은 하한가에 잠겼습니다. 하루에 내려갈 수 있는 폭이 정해져 있어서 그 아래로는 거래가 사실상 멈춘다는 뜻이에요. 그는 잠긴 시장에서 200계약쯤을 겨우 팔았고, 나머지는 은행끼리 직접 거래하는 시장에서 정리했습니다. 하루에 150만 달러였고, 그때까지 그의 최악의 손실이었습니다. 선물이 다시 자유롭게 거래될 때까지 기다렸다면 조금 나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런 계산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시장에서 다치면 저는 빌어먹을 밖으로 나옵니다. 시장이 어디서 거래되든 상관없습니다. 시장이 심하게 불리한데 계속 남아 있으면, 조만간 그들이 당신을 들것에 실어 내갑니다."

다친 사람의 판단은 멀쩡할 때보다 나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다친 자리에서는 판단하지 않기로 미리 정해둡니다.

그가 판단을 잃은 자리가 손실 쪽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듬해에 금이 크게 오르는 동안 그는 그 움직임 바깥에 있었어요. 어제 샀으면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매일 했습니다. 상품 역사상 손꼽히는 가격 움직임이 벌어지는데 자기는 놓치고 있었고, 은행에 둔 현금은 그사이 물가에 밀려 가치를 잃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금을 샀습니다. 정확히 고점을 찍은 그날이었어요. 다음 날 시장은 150달러 낮게 열렸고 75만 달러가 사라졌는데, 고문이 끝났다는 안도가 워낙 커서 잃은 돈에는 개의치 않았다고 그는 말합니다. 사실은 시장이 낮게 열리기를 기도하고 있었다고요. 고통을 멈추려고 산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맞다고 답합니다.

그때 배운 것을 그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들어가 있지 않은 움직임보다 들어가 있는 움직임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요. 좋은 판단을 하는 방법이 아니라, 나쁜 판단이 끼어들 자리를 없애는 배치예요.

"성공한 트레이더는 사실상 전부 자기 성격에 맞는 방식에 도달했습니다"

20년 동안 거래소 매매장 안팎에서 본 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그렇게 됩니다.

예로 나오는 사람은 그의 형입니다. 형은 세금 신고 마감일이 오면 앉아서 연필을 깎고 신고서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아마 3월에 이미 연필을 다 깎아뒀을 거라고 동생은 말합니다. 그 형은 스프레더가 됐습니다. 시장에 한쪽으로 서는 대신 관련된 계약들 사이의 가격 차이를 노려 매수와 매도를 동시에 잡는 사람이요. 매매장에서 어떤 조합의 시세를 물어도 형은 즉시 가격을 말해줄 수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서서 위험을 지는 일은 결코 없었지만, 형은 자기가 매매하고 싶은 방식으로 매매했습니다.

반대편에는 순식간에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거나 아프리카에서 산을 오르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본인은 어느 쪽이냐고 묻자, 그는 자기가 곧이곧대로인 아이였다고 답합니다. 가톨릭으로 자랐고 사제가 되려고 4년을 신학교에서 보냈습니다. 대학에서 카드게임 브리지에 빠져 수업을 전부 빼먹는 바람에 F를 여섯 개 받고 낙제한 뒤 해병대에 징집됐는데, 아버지가 예비군 대령이어서 편한 자리를 얻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요. 그러다 성인이 되어 돈이 주는 자유를 얻자 훨씬 더 위험을 지는 사람이 됐습니다.

"제 매매 방식은 이 상반된 두 성격을 섞습니다. 위험을 좋아하는 부분은 그것이 속할 자리인 매매에 놓고, 보수적인 부분은 그것이 속할 자리인 자금 관리에 놓습니다."

그래서 그는 잃고 있는 동안에는 거는 크기를 계속 줄입니다. 규율이 강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못 벌고 있을 때는 될 것 같은 매매가 아니라 됐으면 하는 매매에 손이 가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도 하나의 추세처럼 다루는 셈입니다.

1988년의 어느 일요일 저녁

1980년대 후반 공항 라운지. 남자 한 명이 캐리어를 옆에 두고 벽면 디스플레이 앞에 서 있다
일요일 저녁, 마이애미행 연결편을 타러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같은 통화가 6년 뒤에 반대 방향으로 돌아옵니다. 캐나다 달러가 심리적으로 결정적인 80센트 수준을 뚫고 올라가자 그는 강하게 매수로 돌아섰고, 포지션을 2,000계약까지 쌓았습니다.

이 매매에는 그의 계획이 걸려 있었어요.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의 목표는 시장에서 5,000만 달러를 빼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자로 원하는 만큼 살 수 있게 절반을 은행에 넣고, 나머지 절반으로는 신문사나 야구단을 사려고요. 그 시절엔 그 돈으로 야구단을 살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두 판의 크기까지 아주 일찍부터 정해뒀는데, 이게 그 끝에서 두 번째 판이었습니다.

그는 자메이카에 집을 짓고 있었고 몇 주에 한 번 공사를 보러 갔어요. 어느 일요일 저녁, 마이애미행 연결편을 타러 나가면서 극동 시장 시세를 보려고 화면 앞에 섰습니다. 캐나다 달러는 극동에서 20포인트도 잘 움직이지 않는 통화인데, 100포인트가 — 그러니까 1센트가 — 낮게 찍혀 있었습니다.

가방은 손에 들려 있었고 리무진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 시세가 오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그냥 100포인트쯤 어긋나게 찍힌 거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며 문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그 일요일 저녁 캐나다 총선 토론에서 야당 후보가 총리를 눌렀고, 24%포인트였던 총리의 우위가 하룻밤 사이 8%포인트로 줄었습니다. 한 달 뒤의 결론이 뻔해 보이던 선거가 동전 던지기가 된 겁니다. 다음 날 아침 시장은 150포인트 넘게 낮게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전화가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근처 호텔로 가서 공중전화를 쓰려고 줄을 서는 것이었어요. 연결됐을 때 그는 이미 300만 달러 넘게 잃고 있었습니다.

400계약쯤 정리했습니다. 시장이 워낙 내려와서 더는 안 내려갈 것 같았거든요. 이후 이삼일 동안 더 무너졌고, 700만 달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전부 나가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정확히 바닥이었습니다. 한 달 안에 가격은 토론 전 수준으로 돌아왔고, 시장은 결국 그가 잡아둔 목표까지 넘어갔어요. 1,500만 달러를 벌기로 계획했던 판이었습니다.

다치면 즉시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이 여기서는 이틀을 미적거렸습니다. 이 책은 그 이틀이 350만 달러 손실을 700만 달러 손실로 바꿔놓았다고 적습니다. 그가 어긴 것은 좋은 규칙이 아니라 자기 성격에 맞춰 만들어 둔 규칙이었습니다.

그는 스물세 살짜리 브로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1982년의 그 지점으로 돌아가면, 지점장이 넘겨준 사람은 스물세 살쯤 된 브로커였습니다. 매케이는 수표를 내려놓고 이렇게 지시했어요. 우선 이 돈의 4분의 3으로 사상 최고치이거나 그 근처에 있는 아주 다양한 종목을 사주십시오. 그리고 매주, 종목을 부문별로 나눠 각 부문 안에서 최고치에 얼마나 가까운지 순위를 매긴 목록을 보내주십시오.

그 브로커는 지시를 정확히 따랐고 계좌는 잘됐습니다. 같은 해에 주가지수 선물이 생기면서 매케이는 계좌를 닫고 그쪽으로 옮겼는데, 원하는 것을 정확히 해준 사람이라 닫는 게 미안했다고 말합니다.

좋은 브로커는 앞의 친구 쪽이었을 겁니다. 10년을 지켜본 종목이 있고, 왜 오를지 설명할 수 있고, 실제로 그 방식으로 번 사람도 있으니까요. 맞는 브로커는 아무 의견이 없어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지킬 수 없는 방법은 좋아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정해두고 못 지킨 규칙을 떠올릴 때, 거기서 의지가 모자랐던 자리 말고 성격과 어긋나 있던 자리를 먼저 찾아보는 편이 나을 수 있어요. 형을 두고 한 말도 형이 부지런하다는 칭찬이 아니라, 형이 자기가 매매하고 싶은 방식으로 매매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슈웨거는 그다음으로, 자기 매매법을 낯선 열세 명에게 통째로 가르친 사람을 찾아갑니다.


고지: 이 글은 2026년 8월에 쓰였고, 인용한 책은 1992년에 출간된 것입니다. 특정 종목이나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출처: Jack D. Schwager, 《The New Market Wizards》(1992), 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