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EO 서재책 한 권을, 끝까지 함께 읽습니다

좋은 의사는 일하면서 돈을 세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든 지표에 자기 직업의 이름을 붙였다

어두운 진료실. 벽에 걸린 판독등에 갈비뼈가 보이는 흉부 사진이 걸려 있고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그 앞에 서 있다
그는 자기가 쓰던 기계의 이름을 지표에 붙였습니다.

1989년에 한 트레이더가 지표를 하나 만들고 자기 성을 앞에 붙였습니다. 뒤에 붙인 낱말은 X선이었습니다.

이름의 유래를 본인이 밝혀 두었습니다. 의사는 X선으로 피부 표면 아래의 뼈 구조를 본다고요. 그러니 이 지표로는 시장 표면 아래에서 어느 쪽 힘이 더 센지를 볼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알렉산더 엘더입니다. 정신과 의사였고, 1993년에 《Trading for a Living》을 냈습니다. 국내판 제목은 《심리투자 법칙》입니다. 낮에는 진료실에 있었고 장중에는 시세 화면 앞에 있었습니다.

자기가 만든 도구에 자기가 쓰던 기계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왜 하필 그 낱말이었나

이 책에는 더 노골적인 자리도 있습니다. 시장 전체를 놓고 쓴 문장입니다.

주식시장은 조울증을 앓는 짐승이다 — 그것은 팽창하는 조증에서 겁에 질린 울증으로 흔들린다.

그리고 시장의 국면을 조증 삽화와 울증 삽화로 진단한다고 적습니다. 삽화라는 말은 정신과에서 기분 장애의 한 구간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입니다. 비유로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 용어를 쓴 것에 가깝습니다.

조울증은 실제 질병이고 시장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표현이 무엇을 밝혀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새로운 것을 설명할 때 어느 서랍에서 낱말을 꺼내는지는, 그가 무엇을 도구로 쓰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책에서 그 서랍은 계속 같은 곳이었습니다.

"포지션이 열려 있는 동안 돈을 세지 마라"

비 온 뒤의 밤거리. 불 켜진 진열창 안에 물건 하나가 받침대 위에 놓여 있고 유리에 선 사람의 모습이 비친다
장부상 이익으로 무엇을 살지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마지막 장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트레이더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 중 하나는 포지션이 열려 있는 동안 돈을 세는 것이다. 돈을 세는 것이 당신의 머릿속을 매듭으로 묶는다.

세는 순간 감정이 발동하고, 그다음부터는 화면이 아니라 금액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장부상 이익으로 무엇을 살지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거든 그 생각을 없애라고 적습니다. 없앨 수 없거든 포지션을 없애라고요.

2026년 6월 24일에 그 숫자가 사상 최대였다

한국에서는 그해 여름에 그 숫자가 사상 최대로 올라갔습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입니다. 자기 돈에 증권사에서 빌린 돈을 보태 주식을 사고 아직 갚지 않은 금액을 말합니다. 6월 24일에 38조 6,328억원이었습니다.

닷새 뒤인 6월 29일, 코스피 변동성지수가 96.94로 마감했습니다. 거래소가 그 지수를 공식 발표하기 시작한 2009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값이었습니다.

빌린 돈이 가장 많은 시점과 시장이 가장 심하게 흔들리는 시점이 같은 주에 있었습니다.

7월의 반대매매는 하루 평균 439억원이었습니다

반대매매는 빌린 돈으로 산 주식의 값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졌을 때, 증권사가 고객의 동의 없이 그 주식을 파는 것입니다. 파는 시점도 가격도 고객이 정하지 않습니다. 2026년 7월의 하루 평균이 439억원이었고, 이것은 1년 전 같은 달의 33억 7,700만원과 비교하면 13배입니다. 같은 기간 반대매매가 일어난 계좌 수는 하루 평균 2,258개로, 1년 전의 622개에서 3.6배가 됐습니다. 금액이 열세 배가 되는 동안 계좌 수는 세 배 반이 됐습니다.

13배와 3.6배를 나란히 놓은 가로 막대 두 개
계좌당 강제로 팔린 금액이 커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실이 금융투자협회에서 받은 자료에 나온 숫자입니다.

13배와 3.6배

두 배수가 다르다는 것은 계좌 하나당 강제로 팔린 금액이 커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매도의 성격입니다. 자기가 파는 것이 아닙니다.

손실이 난 자리에서 스스로 나오려면 그 손실을 확정해야 합니다. 확실한 손실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사람들이 가장 잘 안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실험실에서도 계좌 기록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확실하게 잃는 쪽과 더 잃을 수도 있지만 안 잃을 수도 있는 쪽 중에서, 대부분은 뒤쪽을 고릅니다.

빚은 그 선택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담보 비율이 기준 아래로 내려가면 그날로 정산이 걸립니다. 못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갈지 말지를 고를 기회 자체가 없어집니다.

13배와 3.6배는 집계된 금액과 계좌 수입니다. 그 계좌의 주인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 자리까지 갔는지는 그 자료에 없습니다.

같은 일곱 달에 다른 숫자도 늘었다

2026년 1월부터 7월 사이에 스스로를 전문투자자로 등록한 사람이 3,787명 늘었습니다. 7개월 만에 16.8퍼센트입니다. 7월 기준으로 2만 6,282명이었습니다.

1장의 자기소개와 48장의 마지막 문단을 나란히 놓은 대조표
처음과 끝이 같은 직업으로 묶인다.

자기를 전문가로 등록하는 절차와, 남이 대신 자기 주식을 파는 절차가 같은 일곱 달 안에 있었습니다. 두 숫자 사이에 인과를 걸 근거는 없습니다. 나란히 있었다는 것까지입니다.

이 책이 앞쪽에서 적어 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백 명이 매매를 시작하면 1년 뒤에는 열 명쯤 남는다고요. 출처는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2019년에 브라질에서 데이트레이딩을 시작한 개인 1만 9,646명을 전수로 추적한 연구가 나왔는데, 300거래일 넘게 계속한 사람만 추렸을 때 97퍼센트가 돈을 잃었고 학습의 증거는 찾지 못했다는 결과였습니다. 오래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래 하려면 그때까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빚은 나아질 시간이 오기 전에 먼저 끝을 냅니다.

1장에서 자기를 정신과 의사로 소개한 사람이, 마지막 장을 이렇게 닫습니다.

좋은 교사와 의사와 변호사와 농부는 돈을 번다 — 그러나 일하는 동안 그것을 세지 않는다. 센다면 일의 질이 나빠진다.

그리고 한 줄이 더 있습니다. 의사에게 오늘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고 물으면 답하지 못할 것이라고요. 답할 수 있다면 그를 의사로 두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도 적습니다.

마흔여덟 개의 장을 지나 돌아온 자리가 처음 그 자리였습니다.


고지: 2026년 9월 작성. 인용한 책은 1993년에 출간된 초판입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변동성지수·반대매매·전문투자자 등록 수치는 2026년 6~9월 국내 보도와 금융투자협회 집계를 인용한 것이며, 작성 시점 기준입니다. 브라질 연구의 자료 기간은 2013~2017년입니다. 이 글은 특정 종목·상품·매매 방식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자금 관리의 구체적 비율과 규칙은 원서에 있습니다.

출처: 알렉산더 엘더, 《Trading for a Living》(Wiley, 1993) 38·41·48장 / 금융투자협회 집계 인용 보도(파이낸셜뉴스·이데일리, 2026-06~09) / Chague·De-Losso·Giovannetti, 「Day Trading for a Living?」(FEA-USP 2019_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