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명 중 아흔 명, 그런데 출처가 없었다
주머니에 25달러를 넣고 내렸습니다

1974년 2월, 한 남자가 케네디 공항에 내렸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입던 여름옷 차림이었고 주머니에는 25달러가 있었습니다. 영어는 조금 했지만 이 나라에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며칠 전까지 그는 소련 선박의 의사였습니다. 배가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 닿았을 때 그는 배를 빠져나와 미국 대사관으로 달렸습니다. 옛 동료 선원들이 뒤를 쫓았습니다. 대사관 직원들은 우왕좌왕하다 그를 소련 쪽에 돌려보낼 뻔했습니다. 그가 버티자 그들은 그를 안전 가옥에 넣었다가 뉴욕행 비행기에 태웠습니다.
뉴욕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지갑 속 달러 지폐를 들여다보다 속이 울렁거리는 날이 있었다고 그는 적습니다. 옛 나라에서는 그 지폐 몇 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시베리아에서 3년을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엘더. 정신과 의사이고, 19년 뒤에 《Trading for a Living》이라는 책을 냅니다. 국내에는 《심리투자 법칙》으로 나왔습니다.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매매로 먹고살기'입니다. 앞으로 나오는 인용은 모두 그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자유를 얻으려고 진짜로 도망쳐 본 사람이 자유에 대한 책을 씁니다. 그리고 그 책은 첫 문장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당신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많은 사람에게 돈은 자유를 상징한다"
이 책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돈은 자유를 상징한다. 그 자유로 무엇을 할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으면서도.
같은 낱말이 쓴 쪽에게는 실물이고 읽는 쪽에게는 상징입니다. 한 사람은 자유를 얻으려고 대사관 앞까지 쫓겨 봤고, 책을 펴는 사람은 대체로 그런 일을 겪지 않습니다. 1장과 4장을 나란히 놓으면 이상한 온도 차가 생깁니다. 앞에서는 한 사람이 진짜로 도망치고, 뒤에서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무엇을 오해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가 시장에 발을 들인 계기는 문고본 한 권이었습니다. 1976년 여름,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낡은 닷지를 몰면서 트렁크에 정신의학 책 몇 권과 빌린 문고본 하나를 던져 넣었습니다. 주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을 사로잡은 것은 생각해서 돈을 번다는 발상이었습니다. 그 책을 빌려준 친구는 변호사였는데, 손대는 투자마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사람이었습니다. 미다스의 손을 정확히 뒤집어 놓은 셈입니다. 책을 빌려준 쪽은 그 책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빌린 쪽은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1993년에 그 책이 나왔습니다

열 번째 장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백 명이 매매를 시작하면 1년 뒤에는 열 명쯤 남는다고.
출처는 없습니다. 어느 증권사의 자료라거나 누구의 조사라는 말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설명은 사람의 자질을 탓하는 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한 장이 통째로 판의 구조에 쓰였고, 거기서 매매는 마이너스섬 게임으로 규정됩니다. 승자가 가져가는 돈이 패자가 잃은 돈보다 적은 게임이라는 뜻입니다. 수수료와 체결 손실이 그 사이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시장에는 새로운 패자의 공급이 필요하다 —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짓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노예의 공급이 필요했던 것처럼.
비유는 거칠지만 근거는 거칠지 않습니다. 같은 장에서 수수료를 계약 가치가 아니라 실제로 넣어 둔 돈에 견주라는 제안이 나옵니다. 분모를 바꾸면 "1퍼센트도 안 되는 것"이 성공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바뀝니다. 숫자는 하나도 안 움직였는데 뜻이 뒤집힙니다.
거래소 안쪽에서 들은 말도 하나 옮겨져 있습니다. 피트에 하루 종일 어깨를 맞대고 서 있던 사람들에게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부르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종이였습니다. 오늘 종이 들어오나, 하는 식으로요.
한 낱말이 그 안의 사정을 다 설명합니다. 피트 안쪽에서 바깥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스물여섯 해 뒤에 누군가 그 숫자를 실제로 세었다
2019년, 브라질의 경제학자 세 사람이 논문 한 편을 냅니다. 제목이 《Day Trading for a Living?》입니다. 하루 안에 사고파는 매매, 그러니까 데이트레이딩으로 먹고살 수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앞의 책 제목과 거의 같습니다. 물음표가 하나 더 붙어 있을 뿐입니다.
97퍼센트와 0.4퍼센트
이들이 본 것은 표본이 아니라 전수였습니다. 2013년부터 2015년 사이에 브라질 지수선물 시장에서 데이트레이딩을 시작한 개인 1만 9,646명 전원을 추적했습니다. 거래량으로 세계 세 번째인 시장입니다.

그리고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300거래일 넘게 계속한 사람만 추렸습니다. 며칠 해보고 그만둔 사람은 애초에 세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1년 반 가까이 버틴 사람들만 남은 셈입니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 중 97퍼센트가 돈을 잃었습니다. 은행 창구 직원의 하루 벌이보다 많이 번 사람은 0.4퍼센트였습니다.
이 논문에서 가장 무거운 줄은 그 비율이 아닙니다. 초록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데이트레이딩을 통한 학습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오래 한 사람이 덜 잃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300일을 넘겨 계속해도 곡선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 숫자가 말해 주는 것은 결과의 분포이지 각자의 사정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생활비가 급했고 어떤 사람은 재미로 했을 텐데, 계좌 기록은 그 차이를 구분해 주지 않습니다. 잰 대상은 브라질의 지수선물 데이트레이더였습니다. 시장도 상품도 나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 비율이 그대로 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1993년에 출처 없이 적힌 문장과, 2019년에 전수로 잰 숫자가 같은 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 번 계좌를 바닥까지 몰고 갔다
첫 장으로 돌아가면 이 책을 쓴 사람의 성적표가 나옵니다.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제자리를 맴돌다가도, 그는 번번이 나가떨어졌고 매매 계좌를 바닥까지 몰고 갔습니다. 그때마다 병원 일자리로 돌아가 밑천을 모으고, 읽고, 생각하고, 다시 시험해 보고, 그러고 나서 또 시작했습니다.
바닥을 내고 돌아가고 다시 시작하는 일이 몇 번 반복됩니다. 그 반복이 그를 낫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매매는 "천천히" 나아졌을 뿐이고, 방향이 실제로 꺾인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돌파구는 이길 열쇠가 컴퓨터 안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왔다.
시간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횟수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뀐 것은 매매를 더 많이 해서가 아니라, 매매를 보는 자리를 옮겼을 때였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는 어디서 왔나
백 명 중 아흔 명이 사라진다는 문장에는 출처가 없었고, 스물여섯 해 뒤의 실측은 그보다 더 나쁜 숫자를 내놓았습니다. 오래 하는 것으로는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까지가 지금 확인되는 전부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다음입니다. 그는 매매 기법을 더 찾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이미 십 년 넘게 써 온 도구를 꺼내 옵니다. 카네기홀 건너편 진료실에서 환자를 볼 때 쓰던 모형입니다.
고지: 2026년 9월 작성. 인용한 책은 1993년에 출간된 초판이고, 언급한 수수료·체결 환경은 당시 기준입니다. 브라질 연구의 자료 기간은 2013~2017년입니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매매 방식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매매 규칙과 수치는 원서에 있습니다.
출처: 알렉산더 엘더, 《Trading for a Living》(Wiley, 1993) 1·3·4·10장 / Chague·De-Losso·Giovannetti, 『Day Trading for a Living?』(FEA-USP Working Paper 2019_47; Journal of Banking & Finance 185,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