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EO 서재책 한 권을, 끝까지 함께 읽습니다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잃는 것보다 아팠다

첫 이틀

1979년 아메리카증권거래소 플로어에서 한 남자가 기둥 사이 좁은 자리에 혼자 서 있다
쓸 수 있는 돈은 그중 일부뿐이었습니다.

1979년, 서른네 살의 마티 슈워츠가 가진 돈은 14만 달러였습니다.

그중 9만 2,500달러가 아메리카증권거래소 회원권을 사는 데 들어갔습니다. 일부는 다른 데 묶여 있었고, 그가 실제로 매매에 쓸 수 있는 돈은 2만 달러쯤이었습니다. 처가에서 5만 달러를 더 빌렸습니다.

그는 자기를 용감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그려왔다고 말합니다. 막상 그 자리에 서니 정신이 나갈 만큼 겁이 났습니다.

첫 이틀을 잃으면서 시작했습니다. 그가 깊이 존경하던 트레이더 밥 죌너가 저평가돼 있다고 본 종목이 있어서 거기 옵션에 엮였습니다. 다 합쳐 열 계약쯤이었습니다.

둘째 날, 플로어에서 그는 죌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확실히 맞는 거 맞습니까?"

그때까지 잃은 돈은 1,800달러였습니다. 처가에서 빌린 5만 달러를 자기 자본으로 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거의 10퍼센트를 잃은 셈이었습니다.

셋째 날 그 옵션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넉 달 뒤 그는 10만 달러 앞서 있었습니다.


그는 그 이틀 전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 이야기는 잭 슈웨거가 1989년에 낸 인터뷰집에 실려 있습니다. 슈워츠는 거기서 자기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 걸린 시간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는 9년 동안 증권 애널리스트였습니다. 학교를 잘 다녔고, 리서치를 잘했고, 봉급도 꾸준히 좋았습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한결같이 잃었습니다. 봉급을 받으면서도 거의 빈털터리였습니다.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고 게을러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9년 동안 이미 똑똑했고 이미 열심이었습니다.

그 시절 그가 「탭댄스」라고 부르던 일이 있습니다. 출장을 가서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을 만나 자기가 담당하는 주식에 대한 견해를 늘어놓는 일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회사에 수수료가 되는 주문을 주니까요. 휴스턴에서 다섯 건의 약속을 잡고, 저녁을 먹으러 샌안토니오로 날아가고, 그날 밤 늦게 다시 댈러스로 날아가 이튿날 아침 조찬에 대비하는 식이었습니다. 자기가 고깃덩어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가 스스로에게 몇 년 동안 되풀이한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성공하도록 길러졌는데 왜 나는 잘 못 하고 있지.

그를 바깥으로 밀어낸 것은 아내였습니다. 서른네 살이고 늘 스스로를 위해 일하고 싶어 했으니 나가서 당신 사업을 하라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최악의 경우라 해봐야 예전에 하던 일로 돌아가는 것뿐이에요."

그러니 이 사람의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성공한 뒤보다 그 9년입니다. 무엇이 있으면 안 되던 사람이 되는가, 그리고 그중 무엇이 빠져야 되기 시작하는가.


전환점은 방법에 있지 않았다

슈웨거가 언제 지는 사람에서 이기는 사람으로 바뀌었느냐고 묻자, 슈워츠의 답은 방법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내 자아의 욕구를 돈 버는 일에서 분리할 수 있게 되었을 때입니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전에는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돈을 잃는 것보다 더 속상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자기가 알아냈으니 틀릴 리가 없다는 식이었고,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의지로 밀어붙이려 했습니다.

바뀐 뒤에 그가 스스로에게 하게 된 말은 이렇습니다.

"내가 알아냈지만, 내가 틀렸다면 나는 당장 빠져나간다. 내 돈을 지키고 다음 매매로 가고 싶으니까."


브라질이 여섯 번째로 한 일

브라질 월간 물가상승률이 47퍼센트에서 6.84퍼센트, 1.86퍼센트로 내려간 경로를 보여주는 꺾은선 도해
기준을 하나 정해두고 넉 달 동안 바꾸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이 일이 나라 단위에서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브라질은 물가와 싸우면서 계획을 계속 바꿨습니다. 1986년의 크루자두 계획을 시작으로 1991년까지 다섯 번이었습니다. 대부분 가격을 묶는 방식이었고, 그때마다 물가는 잠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갔습니다.

1994년 6월, 12개월 누적 물가상승률은 약 4,900퍼센트였습니다. 그달 한 달치만 47퍼센트였습니다.

여섯 번째 시도는 순서가 달랐습니다. 값을 묶는 대신 계산 단위를 먼저 통일했습니다. 넉 달 동안 모든 가격을 URV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옮겨 적게 했습니다. 물가에 따라 값을 고치는 관행을 없앤 것이 아니라, 그 관행이 전부 같은 자를 쓰도록 모은 것입니다. 그런 뒤 1994년 7월 1일에 그 기준을 그대로 새 통화로 바꿨습니다. 1 URV가 1 레알이 됐습니다.

그다음 달 물가상승률은 6.84퍼센트였고, 그다음 달은 1.86퍼센트였습니다. 1996년 한 해 전체가 9.6퍼센트였습니다.

여기서 「규칙 하나로 끝났다」고 쓰면 사실과 어긋납니다. 레알 플랜에는 재정 조정과 환율 운용이 함께 있었고, 1999년에는 또 한 번의 위기가 왔습니다. 등재해둘 수 있는 것은 그 기간의 물가 경로와, 여섯 번째 시도가 앞의 다섯 번과 순서가 달랐다는 사실까지입니다.

그리고 두 이야기를 겹칠 때 조심할 데가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규칙을 세우고 지키게 한 것은 국가였습니다. 시민 개개인이 물가 계산법을 스스로 고친 것이 아닙니다. 슈워츠에게는 그런 것을 씌워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길 매매는 언제나 내 앞에 있다"

밤중에 불이 꺼진 시세 단말기들 앞에 빈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이길 매매는 언제나 내 앞에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슈워츠가 손실을 견딜 수 있게 된 근거는 낙관보다 산수에 가깝습니다. 이길 매매는 언제나 앞에 남아 있으니, 지금 이것 하나를 붙들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손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아프지 않다고 그는 말합니다. 실수를 좀 하면 어떻습니까.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수익률이 아니었습니다. 4만 달러를 2,000만 달러 가까이 불리는 동안 자산이 3퍼센트 넘게 줄어든 구간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시장에 걸지 않는 사람도 한 번 되짚어볼 수 있는 일입니다. 최근에 「내가 틀렸다」를 인정하기 어려웠던 순간을 하나 떠올려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때 버티게 만든 것이 손해였는지 아니면 체면이었는지를 되짚어보면 됩니다. 손해였다면 계산이 필요하고, 체면이었다면 계산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그때 새로 생긴 것은 무엇인가

오래 안 되던 사람이 바뀌는 순간에는 무엇이 달라질까요.

슈워츠의 9년을 보면 알아야 할 것을 몰라서 안 됐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애널리스트였고, 그 일을 잘해서 봉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뀐 뒤에도 그가 새로 알아낸 대단한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는 전환점은 아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틀렸을 때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브라질의 여섯 번째 시도도 새로운 경제학을 들여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앞의 다섯 번도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달랐던 것은 이번에는 기준을 하나로 정해두고 넉 달 동안 그것을 바꾸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바뀌는 순간에 새로 생기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킴입니다. 그리고 지킴은 알아내는 것보다 훨씬 재미가 없어서, 대부분의 사람은 다섯 번째까지 계속 새 방법을 찾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지킬 것이 눈에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슈워츠에게는 손절할 자리가 있었고 브라질에는 URV가 있었습니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자체가 보이지 않는 자리도 시장에는 있습니다.


고지: 이 글은 1989년에 출간된 책을 다룹니다. 인용된 시장 상황과 수치는 모두 과거 자료이며, 현재 시장에 대한 판단이나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출처: 잭 슈웨거, 《Market Wizards》(1989) 11장 · Banco Central do Brasil, SGS 시계열 433 (IPCA 월간 변동률) 원자료 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