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 만에 뒤집힌 약속
브로커가 전화를 걸어 좋은 소식을 알려줬다

1977년 봄, 브루스 코브너의 계좌에는 4만 5,000달러가 있었습니다. 석 달 전 3,000달러로 시작한 돈이었습니다.
그는 대두 스프레드를 걸고 있었습니다. 7월물을 사고 11월물을 파는, 두 다리가 서로를 받쳐주는 자리였습니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이 버텨주니까요. 값이 벌어질 때마다 그는 계약을 더 얹었고, 열다섯 세트까지 쌓았습니다.
그러다 브로커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콩이 달나라로 가고 있다, 7월물이 상한가까지 오를 것 같고 11월물도 따라갈 것이다, 그러니 11월물 매도를 들고 있는 건 바보짓이다. 걷어드리겠다.
"전부를 말입니까?!" — "전부요."
15분 뒤 브로커가 다시 전화했습니다. 목소리가 다급했습니다. 시장이 하한가에 잠겼다는 것이었습니다. 받쳐주던 다리를 스스로 걷어낸 참이었습니다.
그날이 끝났을 때 계좌에는 2만 2,000달러가 남았습니다. 코브너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는 무엇을 잘못했다고 말했나
잭 슈웨거가 1989년에 펴낸 인터뷰집 《시장의 마법사들》에서 코브너는 이 매매를 자기 인생의 「깡통 찬 매매」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깡통을 차지는 않았습니다. 석 달 전의 3,000달러에 견주면 계좌는 여전히 몇 배로 불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다고 믿었던 합리적 사고의 과정을 잃어버렸다는 자각."
그를 흔든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규율이라고 여겼던 것이 15분 만에 사라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3,000달러를 4만 5,000달러로 불리면서 아픈 순간을 한 번도 겪지 않았습니다. 쉬웠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 경험 뒤에 코브너가 세운 규칙은 단순합니다. 들어가기 전에 나올 자리를 먼저 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잠을 잘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세계의 그림을 여러 장 만들어두는 일
코브너의 매매는 예측처럼 보이지만 그 자신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상을 여러 장 만들어두고, 그중 하나가 확인되기를 기다립니다."
대부분의 그림은 틀린 것으로 드러납니다. 몇 조각만 맞는 정도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 그림에서 열 조각 중 아홉이 들어맞고, 그때부터 그것이 그가 보는 세계가 됩니다.
1987년 10월이 그랬습니다. 주식시장이 무너진 그 주 내내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여러 장의 그림을 하나씩 대어보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밤이 되어서야 하나로 뭉쳤습니다. 전 세계적 공황이 부양을 강제하고, 일본은행과 분데스방크는 물가를 자극할 조치를 꺼리고, 미국의 무역적자는 그대로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미국이 달러를 놓아주는 것.
주말이 지나고 그는 일요일 밤 극동 시장이 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같은 달, 폭락 당일에 그가 실제로 한 일은 예측과 정반대였습니다. 10월 19일과 20일에 그는 가진 포지션을 전부 정리했습니다. 세상에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모르는 채로 큰돈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 갇히지 않는 것."
3.01이 뚫리자 거래가 사라졌다
코브너는 인터뷰 당시 갓 지나간 일 하나를 사례로 듭니다. 1980년대 후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말하기로, 파운드와 마르크의 교환 비율이 1년 내내 2.96과 3.00 사이에 갇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값이 상단을 스무 번쯤 두드렸고, 영란은행이 계속 받아냈습니다. 그러다 영란은행이 물러섰습니다.
3.01이 뚫리자 거래가 사라졌습니다. 다음 거래가 붙은 값은 3.0350이었습니다. 사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그 사이에 없었습니다.
12월의 문서와 1월의 문서

2014년 12월 11일, 스위스국립은행이 통화정책 평가를 냈습니다. 스위스 프랑의 값을 유로당 1.20 아래로 내려가지 않게 막아온 정책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서에 쓰인 표현은 이렇습니다. 이 최저환율을 가장 확고한 결의로 지켜내겠다, 필요하다면 무제한으로 외화를 사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같은 문서는 이 최저환율을 스위스 통화정책의 핵심 수단이라고 규정했습니다.
35일 뒤인 2015년 1월 15일, 같은 기관이 같은 형식의 문서를 냈습니다. 최저환율을 폐기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치금 금리는 마이너스 0.25퍼센트에서 마이너스 0.75퍼센트로 내려갔습니다.
그날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호가로 설명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영란은행이 물러선 날처럼, 값과 값 사이가 비었습니다.
스위스국립은행이 든 이유는 주요 통화권의 통화정책이 서로 크게 갈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프랑은 유로 대비로 2015년 중반까지 약 15퍼센트 올랐습니다.
여기서 12월의 문서를 거짓말이라고 부르면 곤란합니다. 중앙은행이 미리 하는 약속은 그 자체가 정책 수단입니다. 시장이 그 약속을 믿어야 약속을 지키는 비용이 줄어드니까요. 확고하게 말하는 것이 그 일의 일부입니다.
그러니 가장 확고하게 약속한 쪽이 먼저 뒤집는 일은 배신이라기보다 이 수단에 딸린 대가에 가깝습니다. 확고하게 말할수록 그 말을 지키는 비용이 줄고, 비용이 줄수록 더 오래 버티게 되고, 더 오래 버틴 만큼 그만두는 순간의 낙차가 커집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앞서 본 코브너의 태도와 어긋납니다. 그는 시장이 대개 앞서간다고,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고 봤습니다. 정보는 어떻게든 가격에 먼저 새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2015년 1월의 스위스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정책을 언제 거둘지는 결정하는 쪽에서만 나올 수 있는 종류의 정보였고, 그 시점은 발표 전까지 가격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1년에 두 번만 나를 깨울 수 있습니다"
코브너는 하루 24시간 시장을 지켜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에도 시골집에도 화면이 있었고, 밤에도 사람을 두었습니다.
그의 보조 트레이더에게는 규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코브너를 깨울 수 있는 것은 1년에 두 번뿐이라는 것. 사무실에서는 이걸 농담처럼 말했다고 합니다.
정작 그 보조는 하룻밤에 서너 번씩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럼 나올 자리는 어떻게 아는가
읽는다는 말은 맞히는 일처럼 들립니다. 코브너가 하는 일을 보면 조금 다릅니다.
그는 세계의 그림을 여러 장 만들어두고 기다립니다. 대부분 틀립니다. 하나가 맞으면 그때 겁니다. 그러면서도 걸기 전에 나올 자리를 먼저 정합니다. 자기 그림이 틀렸을 때 어디서 인정할지를,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함께 정해두는 것입니다.
1977년의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브로커의 전화 한 통에 받쳐주던 다리를 걷어냈고, 그 자리에 나올 계획은 없었습니다.
스위스국립은행이 12월에 낸 문서에는 그 자리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공개된 문서 어디에도 이 약속을 언제 거둘지에 대한 조건은 없었습니다. 물러서는 날 값과 값 사이가 비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올 자리를 정하는 일은 규칙으로 적어둘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두기만 하면 누구나 지킬 수 있을 것처럼도 보이고요. 이 책에는 바로 그 생각을 걸고 내기를 한 사람이 나옵니다.
고지: 이 글은 1989년에 출간된 책을 다룹니다. 인용된 시장 상황과 수치는 모두 과거 자료이며, 현재 시장에 대한 판단이나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출처: 잭 슈웨거, 《Market Wizards》(1989) 2장 · 스위스국립은행 보도자료(2014-12-11, 2015-01-15) · BIS Working Papers No 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