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의 끝에 있던 사람

열 시간

2023년 3월 9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에서 하루 동안 420억 달러의 인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시간으로 나누면 한 시간에 42억 달러, 초로 나누면 100만 달러가 넘습니다. 그것이 열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때까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컸던 예금 인출은 2008년 워싱턴뮤추얼의 167억 달러였는데, 그건 열흘에 걸친 숫자였습니다.
그날 장이 끝났을 때 은행의 현금 잔고는 마이너스 9억 5,800만 달러였습니다.
무엇이 그 속도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비교적 분명합니다. 은행이 자본 확충 계획을 발표한 직후, 영향력 있는 벤처투자자 여럿이 자기 계정으로 경고를 올렸고 비공개 대화방이 뒤따랐습니다. CNN은 그것을 최초의 트위터발 뱅크런이라고 불렀습니다.
100년 전에 같은 사슬이 있었습니다. 다만 완성되는 데 몇 달이 걸렸습니다. 그 사슬의 양쪽 끝을 다 본 사람이 남긴 기록이 있는데, 기자 에드윈 르페브르가 1923년에 회고 형식으로 쓴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입니다. 화자의 이름은 래리 리빙스턴이고 모델은 투기꾼 제시 리버모어였습니다.
정보를 받는 사람은 술꾼과 같다
그 책 16장은 정보에 관한 장입니다. 화자는 날마다 수백 개의 정보를 받는다고 적고, 정보로 매매하는 것이 자기에게는 언제나 어리석음의 극치로 보였다고 씁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 흔한 훈계와 다릅니다.
때때로 나는 정보를 받는 사람이 술꾼 같다고 생각한다. 갈망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행복에 없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그 취기를 늘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갈망의 정체를 이렇게 짚습니다.
그것은 열망에 눈먼 탐욕이라기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붕대 감긴 희망이다.
탐욕이 아니라 면제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그것도 쉽게 따를 수 있는 형태로 들으면 판단하는 일에서 놓여납니다. 화자는 그것이 바깥 대중만의 일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거래소 바닥의 전문 트레이더도 꼭 그만큼 나쁘다고요.
자기 경험도 적어 뒀습니다. 사람들에게 시장 전체가 어떤 상태이고 왜 그렇게 보는지를 설명하면, 상대는 듣기를 힘들어하다가 말이 끝나면 시간을 낭비했다는 얼굴로 그를 노려본다는 겁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종목과 방향, 두 단어였으니까요.
라인하트의 편지지
같은 장에 반대편 사람이 나옵니다.
화자가 아는 가장 현명한 투자자였다는 사람인데, 남의 안경은 쓸 데가 없다며 자기 질문을 직접 던지고 자기 눈으로 본 것만 믿는 부류였습니다. 그가 한 철도 회사 주식을 들고 있다가 경영이 방만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장을 직접 만나러 갔습니다. 소문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사장은 강하게 부인했고, 나아가 숫자로 증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떻게 서 있는지 1센트 단위까지 보여 줬습니다.
그 투자자는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뉴욕으로 돌아와 그 회사 주식을 전부 팔았습니다.
여러 해 뒤 왜 그랬느냐는 물음에 그가 설명한 것이 이렇습니다. 사장이 숫자를 적을 때 책상에서 편지지를 꺼냈는데, 두 가지 색으로 인쇄한 머리글이 붙은 고급 아마포 종이였습니다. 숫자 몇 개를 적고는 구겨서 휴지통에 던졌습니다. 절약을 설명하려고 또 한 장을 꺼냈고, 또 휴지통으로 갔습니다.
사장이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면 절약하는 부하를 두라고 고집하거나 보상할 리가 거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뒤 그는 다른 철도 회사에 갔습니다. 그 회사 사장은 뜯은 봉투를 모아 두었다가 한가할 때 빙 둘러 뜯어, 한쪽 면이 깨끗한 종잇조각을 만들어 사무실에 나눠 두고 메모지로 쓰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회사 주식을 샀습니다.
두 사람 다 그에게 정보를 준 적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숫자를 줬고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는데, 그가 읽은 것은 둘 다 종이였습니다.
신문이 대신 광고해 주었다
22장에서 화자는 사슬의 반대편에 섭니다. 이번에는 정보를 받는 쪽이 아니라 그 정보가 만들어지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회사 주식 10만 주를 처분하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팔 방법이 마땅치 않던 어느 날, 주가가 스스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오후에 이유를 들었습니다. 장 마감 뒤와 다음 날 개장 전에, 그가 그 종목에 크게 상승 쪽이고 값을 곧장 15~20포인트 밀어 올릴 참이라는 말이 장내 트레이더들에게 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뿌린 사람은 그 회사와 이해가 걸린 큰손이었고, 전날의 상승을 만든 것도 그 사람의 매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조간에 기사가 실렸습니다. 래리 리빙스턴이 그 종목에서 활발한 상승 작전을 시작하려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판본마다 세부가 달랐습니다. 어떤 기사는 그가 내부자 풀을 만들었다고 썼습니다. 배당 발표가 임박했다는 쪽도 있었고, 회사가 자산을 감췄다며 몰아붙인 기사도 있었습니다. 다만 하나에는 다 동의했습니다. 상승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것.
사무실 전화가 아침 내내 울렸습니다. 그 종목이 오르는 게 사실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사흘 전에는 아무도 어떤 값에도 원하지 않던 주식을 사겠다는 주문이 전국에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잊지 마시라. 사실 대중이 근거로 삼은 것이라고는 성공한 큰손이라는 내 신문상의 평판뿐이었고, 그것은 상상력 풍부한 기자 한둘에게 감사할 일이었다.
그는 상승 사흘째부터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맡은 10만 주를 전부 넘겼습니다.
양장점 주인

그 일에는 뒷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얼마 뒤 그의 아내가 추천받은 양장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솜씨가 좋고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이었습니다. 서너 번째 방문에서 낯이 익어지자 그 양장점 주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리빙스턴 씨가 콘솔리데이티드 스토브를 곧 올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분이 그걸 올릴 거라는 말을 듣고 저희가 좀 샀거든요.
화자가 남긴 문장은 두 개입니다.
그런 종류의 정보를 따라서 죄 없는 사람들이 돈을 잃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내가 왜 정보를 결코 주지 않는지 이제 아실 것이다.
이 대목은 자주 통쾌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정보를 뿌린 큰손이 있었고 화자가 그것을 이용해 물량을 다 털었으니, 한 판 이긴 이야기처럼 보이니까요. 그런데 그는 이긴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사슬의 끝을 봤습니다. 그 끝에는 그 정보를 만든 적도, 그 판에 낀 적도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8장 끝에도 비슷한 멈춤이 있습니다. 자기 작전이 성공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렇게 적습니다.
내가 그들 처지였다면 했을 일을 내부자들이 당연히 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성공담을 스스로 깎아내리며 장을 닫는 방식입니다.
2026년에도 종목을 찍어 주는 방을 겨냥한 피해 상담이 이어졌고, 언론은 특히 은퇴 자금을 든 노년층이 표적이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100년 사이에 사슬은 짧아졌습니다. 몇 달이 걸리던 것이 열 시간이 됐고, 전국으로 퍼지는 데 신문 지면이 필요하던 것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슬의 모양은 그대로입니다. 만드는 사람, 옮기는 사람, 그리고 끝에서 그것을 사실로 받는 사람.
세 자리의 차이는 아는 양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아느냐에 있습니다. 만든 사람은 자기가 만들었다는 것을 압니다. 옮긴 사람도 대개 어디서 들었는지는 압니다. 그런데 끝에 있는 사람에게 그 말은 출처가 지워진 채로 도착합니다. 양장점 주인이 들은 것은 누가 무엇을 계획한다는 소문이 아니라 그냥 사실이었습니다. 리빙스턴 씨가 그걸 올릴 거라는.
그래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자기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 방법이 없습니다. 확인하려면 사슬을 거꾸로 따라가야 하는데, 거꾸로 따라갈 수 있으면 애초에 마지막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같은 사슬은 값이 오를 때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 편이 다룬 사건 —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2023년 3월 9일 하루 동안 실리콘밸리은행(Silicon Valley Bank·SVB)에 420억 달러의 예금 인출 요청이 접수됐습니다. 시간당 약 42억 달러, 초당 100만 달러가 넘는 속도로 열 시간가량 이어진 규모이며, 여러 매체가 기록상 최대의 뱅크런으로 집계했습니다. 비교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2008년 워싱턴뮤추얼의 인출은 열흘간 167억 달러였습니다.
그날 영업 종료 시점 은행의 현금 잔고는 마이너스 9억 5,800만 달러였고, 이튿날 감독당국이 은행을 폐쇄했습니다.
확산 경로에 대해서는 저명한 벤처투자자들이 소셜미디어에 공개적으로 경고했고 비공개 대화방이 뒤따랐다는 점까지가 보도로 확인됩니다. CNN은 이를 「최초의 트위터발 뱅크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만 개별 예금자가 정확히 무엇을 보고 인출을 결정했는지, 각 경로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계량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유사투자자문 관련 피해에 대해서는 단독 보도로만 확인된 수치가 있어 이 글에서는 금액과 건수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2026년 8월에 쓰였습니다. 본문의 사건과 수치는 이미 확정된 과거 자료이며 전망·예측을 담지 않습니다. 특정 금융기관이나 종목에 대한 평가·권유를 담지 않습니다.
출처: 에드윈 르페브르, 《Reminiscences of a Stock Operator》(1923) 16장·18장·22장 · 시장 자료: Fortune, CNN, Axios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