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EO 서재책 한 권을, 끝까지 함께 읽습니다

자리를 잃는다는 말

1900년대 초 중개인 사무실. 시세판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 몸을 기울이는 가운데, 한 노인만 안락의자에 미동 없이 앉아 있다
같은 방 안에서 한 사람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강세장이잖소

1900년대 초 뉴욕의 한 중개인 사무실에 파트리지라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가슴팍이 두툼하고 턱 끝을 가슴에 붙인 채 이 방 저 방을 걸어 다녀서, 사람들은 뒤에서 그를 칠면조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다른 손님들과 몇 가지가 달랐습니다. 자청해서 조언한 적이 없고, 자기가 번 것을 자랑한 적도 없었습니다. 남의 말은 아주 주의 깊게 들었는데 정작 정보를 얻는 데는 열심이지 않아 보였습니다. 누가 정보를 주면 정중히 고마워했고, 그게 맞으면 한 번 더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어긋나도 결코 징징대지 않아서, 그가 그 정보를 따랐는지 흘려보냈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존 패닝이라는 손님이 그에게 자주 하던 하소연이 있습니다. 어느 큰손이 중개인에게 주문 내는 걸 우연히 엿듣고 따라 샀는데 100주로 3포인트밖에 못 벌었고, 팔자마자 그 주식이 사흘 만에 24포인트 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최소한 네 번째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는데, 노인은 처음 듣는 것처럼 다정하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등 떠밀려 뭔가 하고 싶어 했습니다. 실패의 책임을 남에게 지우기 위해서였죠. 그래서 파트리지에게 가서 누구한테 무슨 정보를 들었다고 늘어놓고 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받은 정보가 사라는 것이든 팔라는 것이든, 노인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강세장이잖소!

파트리지라는 이 노인은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 5장에 나옵니다. 기자 에드윈 르페브르가 1923년에 회고 형식으로 쓴 책이고, 화자의 이름은 래리 리빙스턴, 그 모델은 투기꾼 제시 리버모어였습니다. 인용은 5장과 10장에서 가져왔습니다.


엘머 하우드가 알아듣지 못한 말

어느 날 엘머 하우드라는 사람이 사무실로 뛰어들어 주문을 넣고는 파트리지에게 다가갑니다. 자기가 사라고 알려 줬던 종목을 방금 팔았다고, 되돌림이 올 때가 됐으니 어르신도 그러시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노인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젓습니다.

아니요! 아니요! 나는 그럴 수 없소!

엘머가 따집니다. 그 주식이 열흘 만에 7포인트 올랐지 않느냐고, 넘기고 되돌림에서 되사면 원가를 낮출 수 있지 않느냐고요. 노인이 몹시 괴로워하며 답합니다.

이 사람아, 내가 지금 그 주식을 팔면 내 자리를 잃네. 그러면 나는 어디 있게 되겠나?

엘머는 두 손을 들고 물러납니다. 팔면 일자리를 잃는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하죠. 그러자 노인이 끼어듭니다. 일자리라고 하지 않았고 자리라고 했다고요.

자네가 내 나이가 되고 내가 겪은 만큼의 호황과 공황을 겪어 보면, 자리를 잃는 것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걸세. 나는 여러 해의 경험에 따라서만 매매할 수 있어. 나는 그 경험에 비싼 값을 치렀고, 두 번째 수업료를 내던지고 싶지 않네.


2만 달러 자리에서 2,000달러

화자가 이 말을 알아들은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자기가 큰 흐름을 제대로 읽고도 벌었어야 할 만큼 벌지 못한 일들을 되짚기 시작하면서였죠.

그는 강세장 초입에 상승 쪽에 섰고, 예상대로 올랐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다음에 그는 원로들의 말대로 조심스럽게, 보수적으로 했습니다. 이익을 챙기고 되돌림에서 다시 사는 것. 모두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되돌림은 자주 오지 않았습니다. 4포인트를 주머니에 넣고 앉아서 그 주식이 10포인트를 더 치솟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이익을 챙겨서 가난해지는 법은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 가난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강세장에서 4포인트 이익을 챙겨서 부자가 되지도 않는다.

2만 달러를 벌었어야 할 자리에서 그가 벌어 나온 것은 2,000달러였고, 그는 그것을 자기 보수주의가 해 준 일이라고 적었습니다.


로버츠의 유모차

넓은 나무 마루 위에 홀로 놓인 빈 유모차. 바퀴 옆에 모자가 떨어져 있다
손절 주문 하나를 뗀 것과 유모차 값 사이에는 두 달이 있었습니다.

같은 책 10장에는 반대편 사람이 나옵니다.

팜비치에서 만난 노신사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팻 헌이라는 승부사가 있었는데, 활발한 종목을 조금씩 사서 오를 때마다 같은 크기로 보태 나가되, 손절 주문을 늘 마지막 매수가 바로 아래에 두고 가격이 오르면 그 주문도 함께 끌어올렸습니다. 조금만 되돌리면 그는 튕겨 나갔습니다. 대박을 노리지 않고 확실한 돈을 노리는 방식이었죠.

로버츠는 그 방식을 따라 쓰던 손님이었습니다. 한 종목에서 10만 달러 넘게 벌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른 종목으로 갈아탔습니다. 큰돈을 벌었으니 이제 그 방식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겁니다. 되돌림이 왔을 때 손실을 짧게 자르는 대신 이익인 것처럼 굴러가게 뒀고, 한 푼도 남지 않았습니다.

몇 해 뒤 그는 다시 기회를 잡습니다. 1875년, 시장이 두들겨 맞던 국면에서 정확히 옳은 때에 공매도로 들어갔고 내려가는 길에 계속 팔았습니다. 나흘 만에 계좌에 1만 5,000달러 이익이 찍혔습니다. 손절 주문이 없는 것을 보고 사무실에서 말을 꺼내자, 하락이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1포인트 되돌림에 흔들려 나갈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8월이었습니다.

9월 중순이 되기 전에 그는 내게서 10달러를 빌렸어. 유모차 값으로. 넷째 아이였지.

손절 주문 하나를 뗀 것과 유모차 값 10달러 사이에는 두 달이 있었습니다. 그가 잃은 것은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그 판단을 대신 지켜 주던 장치였습니다.


편지 한 통

2000년 3월 나스닥 고점부터 2002년까지를 네 단계로 이은 도해
자리를 지킬 판단은 있었다. 그 자리를 지탱하던 자금이 먼저 떠났다.

2000년 3월 30일, 줄리언 로버트슨은 자신이 운용하던 65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청산하고 남은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줬습니다.

그는 1년 넘게 인터넷과 통신, 기술주의 상승이 실체에 근거하지 않았고 결국 무너질 것이라는 판단을 굽히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맞았습니다. 나스닥은 3월 10일에 고점을 찍었고, 그가 문을 닫은 것은 그로부터 불과 몇 주 뒤였습니다. 그해 11월 말까지 나스닥은 고점 대비 71% 내려갔습니다.

그가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내가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는 시장에서 투자자를 위험에 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문을 닫은 이유는 판단이 바뀌어서가 아니었습니다. 1997년 말 이후 펀드 성과가 크게 밀렸고 환매가 이어졌습니다. 자리를 지킬 판단은 있었는데, 그 자리를 지탱하던 자금이 먼저 떠난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다른 길을 갔습니다. 기술주를 공매도하다 크게 데인 뒤 방향을 돌려 사는 쪽으로 옮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끝까지 버틴 사람이 이기는가

파트리지와 로버츠를 방식·잘되기 시작했을 때·결말 세 항목으로 비교한 도해
없던 것은 의지가 아니라 장치였다.

파트리지는 자리를 지켰고, 로버츠는 자기 방식을 버렸습니다. 로버트슨은 판단을 지켰는데 자금이 먼저 떠났고, 드러켄밀러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넷을 한 줄에 세우면 「끝까지 버틴 사람이 이긴다」는 이야기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은 네 사람 어디에도 맞지 않습니다.

로버트슨은 맞히고도 문을 닫았고, 이 책의 화자는 여러 번 틀리고도 살아남았습니다. 화자는 스물세 살이 되기 전에 두 번, 2년 안에 세 번 파산했는데 그때마다 다시 시작할 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남의 돈을 맡아 운용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틸 수 있느냐는 판단의 문제이기 전에 누구의 돈으로 버티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자리를 지키는 것과 버티는 것

지키는 것과 버티는 것의 차이에 가장 가까운 문장이 5장에 있습니다.

큰돈을 벌어 준 것은 결코 내 생각이 아니었다. 언제나 내가 앉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 버틴 것 말이다!

그런데 같은 대목에 조건이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옳으면서 동시에 가만히 앉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옳은 것과 버티는 것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파트리지의 말은 버티라는 조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 유혹에 약하다는 걸 알아서 아예 그 자리에 자기를 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로버츠에게 없던 것도 의지가 아니라 그 장치였습니다. 손절 주문을 걸어 두는 방식이 그의 판단을 대신 지켜 주고 있었는데, 잘되기 시작하자 그 장치를 스스로 뗐습니다.

그러니 지킨다는 말에는 두 층이 있습니다. 판단을 지키는 것과, 그 판단을 지켜 줄 장치를 지키는 것.

그리고 둘 다 있어도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로버트슨에게 모자랐던 것은 판단도 장치도 아니었으니까요.


이 편이 다룬 사건 — 타이거 펀드 청산

타이거 매니지먼트(Tiger Management) 청산 (2000년 3월 30일) — 줄리언 로버트슨(Julian Robertson)은 65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를 청산하고 대부분의 자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줬습니다. 나스닥종합지수가 3월 10일 5,048에서 고점을 찍은 지 몇 주 뒤였고, 지수는 그해 11월 말까지 71%, 2002년 10월까지는 78% 내려갔습니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과 확인되지 않는 것을 나눠 둘 필요가 있습니다. 청산 시점과 규모, 투자자에게 보낸 편지의 문구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반면 그가 며칠만 더 버틸 수 있었는지, 환매 압력이 어느 시점에 결정적이었는지는 공개된 자료로 확정되지 않습니다.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같은 시기 기술주에서 방향을 바꿨다는 것은 여러 회고에 등장하지만 수치가 출처마다 달라 이 글에서는 금액을 쓰지 않았습니다.

참고: Institutional Investor — The Tiger in Winter · Washington Post 2000-03-31 · Goldman Sachs — 2000 Dot-Com Bubble


이 글은 2026년 8월에 쓰였습니다. 본문의 사건과 수치는 이미 확정된 과거 자료이며 전망·예측을 담지 않습니다. 특정 종목이나 운용 방식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출처: 에드윈 르페브르, 《Reminiscences of a Stock Operator》(1923) 5장·10장 · 시장 자료: Institutional Investor, Washington Post, Goldman Sachs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