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EO 서재책 한 권을, 끝까지 함께 읽습니다

500달러짜리 책

책상 너머로 보이는 사무실 문간에, 가방을 든 남자가 역광 속 실루엣으로 서 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고 그는 적었습니다.

낯선 남자가 사무실에 서 있었다

어느 날 장이 닫힌 직후, 개인 사무실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서른에서 서른다섯쯤 되어 보였고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태도가 특별히 유쾌하지도, 말솜씨가 능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 월터 스콧 건으로 뵈러 왔습니다.

책 외판원이었습니다.

그가 말했고 나는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안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조차도.

독백이 끝나자 외판원은 만년필과 빈 서식을 차례로 내밀었고, 그는 서명했습니다. 월터 스콧 전집 한 질을 500달러에 받는 계약이었습니다.

서명하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계약서는 이미 그의 주머니 안에 안전했다.

그는 그 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놓을 자리도 없었고, 쓸모도 없었고,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남긴 사람은 래리 리빙스턴이라는 화자입니다. 기자 에드윈 르페브르가 1923년에 회고 형식으로 쓴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 12장이고, 화자의 모델은 투기꾼 제시 리버모어였습니다. 그는 이 일화를 자세히 이야기한 이유를 나중에 밝힙니다. 같은 일이 규모만 바꿔 한 번 더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토머스화된 사람

그 외판원과는 몇 주 뒤 고가철도 열차에서 다시 마주쳤습니다. 그가 모자를 들어 인사하며 하딩 씨는 잘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날 데려가 준 덕에 그분께 2,000달러어치를 팔았다고요. 그런 얘기는 안 하는 부류라고 덧붙이면서요. 파크 플레이스에 열차가 서자 그는 시장님을 뵈러 간다며 일어섰고, 자기도 공화당원이라고 말한 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내렸습니다. 열차가 기다려 줄 것이라 확신하면서. 그리고 정말 기다렸습니다.

몇 해 뒤, 훨씬 큰 판에서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퍼시 토머스는 당대 가장 이름난 면화 투기꾼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 화자는 면화에 하락 쪽이었고 실제로 공매도하고 있었습니다. 토머스는 상승 쪽이었습니다.

토머스가 내놓은 사실과 숫자를 화자는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진위를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박하지 못한 것과 설득당한 것은 다릅니다. 화자가 남긴 진단이 그 차이를 정확히 짚습니다.

사람은 자기 확신에 반해서 납득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확실과 우유부단의 상태로 말려 들어갈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나쁘다.

무너진 것은 그의 결론이 아니라 자기 자료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자기 눈으로 시장을 볼 수 없게 되자 남은 것은 상대의 눈뿐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그가 읽는 대로 여건을 읽게 되었다. 우리 둘 다 같은 책의 같은 쪽을 읽고 있었고, 그 책은 그가 내 눈앞에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매도를 덮고 매수로 돌아 6만 베일을 샀습니다. 시장은 반대로 갔고, 그는 손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값을 떠받치기 시작했습니다. 버킷숍 시절의 자기도 하지 않았을 짓이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토머스화된 사람이었다.


테이프는 기사도를 모른다

유리 덮개 기계에서 흘러나온 긴 종이 띠가 바닥에 크게 뭉쳐 쌓여 있다. 띠에는 아무 표시도 없다
테이프는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면화에서 무너진 뒤, 댄 윌리엄슨이라는 사람이 그를 불렀습니다.

세련된 태도에 다정한 미소를 가진 신사였고 돈이 넘쳐서 비루한 동기를 의심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회사가 그의 주식 거래를 맡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청하지도 않은 2만 5,000달러짜리 수표를 내놓았습니다.

화자는 3주 만에 11만 2,000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다음 그가 어떤 종목을 사려 하자 윌리엄슨이 말렸습니다. 자기 처남이 그 종목에 관계돼 있다고요. 화자는 물러섰습니다. 다음에 또 말렸을 때도 물러섰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습니다. 그가 잃은 것을 그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사람이 잃는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벌 수 있다. 그러나 그때 내가 가졌던 것 같은 기회는 매일 오지 않는다.

그리고 13장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 이어집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러나 주식시장에서는 아니다. 테이프는 기사도를 모르고, 게다가 충성에 보상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원문을 절반만 옮기는 것이 됩니다. 바로 다음 문장이 이렇습니다.

나는 내가 달리 행동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안다. 주식시장에서 매매하고 싶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새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는 자기 선택을 후회한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온당했고 투기꾼으로서는 아니었다고, 두 가지를 나란히 적어 뒀을 뿐입니다.


파는 유일한 방법은 파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부탁이었습니다.

존 프렌티스는 여러 해 알고 지낸 사이였습니다. 그가 관여한 회사의 주식이 팔리지 않자 화자를 찾아와 물량 처분을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화자가 보기에 미심쩍어서 사양했는데, 프렌티스가 개인적인 문제로 걸고 우겼습니다.

나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일에 나를 결부시키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그런데 사람이 친구와 지인에게 얼마간 빚진 것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렇게 그는 자기 판단에 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값을 조금 올리고 조금 팔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대중이 따라붙지 않았고, 그는 프렌티스를 불러 그만두자고 했습니다. 반대하는 상대에게 이유를 설명한 대목이 이렇습니다.

풀 관리자는 동행이 있을 때는 기꺼이 자기 주식을 사야 합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자기가 유일한 매수자일 때 사는 것은 얼간이 짓입니다.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파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는 유일한 방법은 파는 것입니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그에게서 가져갔습니다. 토머스는 확신을, 윌리엄슨은 자유를, 프렌티스는 시간을. 그리고 세 번 다 그는 상대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자기 판단을 내려놓았습니다.


나흘

7월 31일과 8월 4일 개인·외국인 순매수와 순매도를 0 축 양쪽으로 그린 막대 도해
이 표는 개인을 하나의 합계로 집계한다.

여기서 오늘로 옵니다.

2026년 7월 31일, 코스피는 하루에 17.91% 올랐습니다. 1980년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었습니다. 그날 개인은 8조 2,543억을 순매도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나흘 뒤인 8월 4일, 코스피는 1.62% 올라 6,358.95로 마감했습니다. 그날 개인은 8,184억을 순매수했습니다. 오른 종목이 788개, 내린 종목이 96개였습니다.

같은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같은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수급 통계는 얼마가 팔리고 얼마가 사졌는지까지만 알려 줍니다. 그 나흘 사이에 각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무엇을 보고 마음을 바꿨는지, 누구의 말을 들었는지는 그 표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칸이 없으니까요.


판단이 넘어가는 순간

네 번의 위탁에서 기록에 남은 것과 남지 않은 것을 나란히 적은 표
남지 않은 것은 매번 같다.

12장의 그 계약서에는 500달러와 날짜와 서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그 책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대목에서 마음이 넘어갔는지도요. 본인조차 그 독백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면화 6만 베일에도 수량과 체결가가 남았고, 윌리엄슨의 장부에도 3주간의 11만 2,000달러가 남았고, 프렌티스의 풀에도 처분 기록이 남았습니다. 남지 않은 것은 매번 같습니다.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그러니 이 질문의 답은 아니오입니다. 기록에 남는 것은 결과뿐이고, 결과만 보면 그것은 언제나 본인이 내린 결정처럼 보입니다. 화자가 자기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적어 둔 이유도 거기 있을 겁니다. 적어 두지 않으면 그것도 그냥 실패한 매매 하나로 남으니까요.

그리고 그 세 사람 중 누구도 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토머스의 숫자는 진짜였고, 윌리엄슨의 호의도 진짜였고, 프렌티스의 부탁도 진짜였습니다. 넘어가는 데 거짓말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말이 도착하는 것뿐입니다.


이 편이 다룬 사건 — 2026년 7월 31일과 8월 4일

2026년 7월 31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17.91% 상승해 6,595.45로 마감했습니다. 1980년 이후 하루 상승률로 가장 큰 폭이었습니다. 같은 날 개인 투자자는 8조 2,543억 원을 순매도했고 이는 역대 최대 규모였으며, 외국인은 7조 2,196억 원을 순매수했습니다.

나흘 뒤인 8월 4일 코스피는 101.50포인트(1.62%) 오른 6,358.95로 마감했고, 이날은 개인이 8,184억 원을 순매수하고 외국인이 3,706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상승 종목 788개, 하락 종목 96개였습니다.

이 두 날짜 사이에서 확인되는 것은 매매 주체별 순매수·순매도 금액까지입니다. 수급 통계는 개인 투자자를 하나의 합계로 집계하므로, 7월 31일에 판 사람과 8월 4일에 산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조차 이 자료로는 알 수 없습니다. 개별 판단의 이유는 더더욱 기록되지 않습니다.

참고: 서울신문 2026-08-04 · MBC 뉴스데스크 2026-07-31 · 머니투데이 2026-07-31


이 글은 2026년 8월에 쓰였습니다. 본문의 사건과 수치는 이미 확정된 과거 자료이며 전망·예측을 담지 않습니다.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출처: 에드윈 르페브르, 《Reminiscences of a Stock Operator》(1923) 12장·13장·21장 · 시장 자료: 서울신문 외 (2026년 7~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