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에 이미 맞히고 있었다

19,646명의 명단
브라질의 연구자 세 사람이 명단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2013년부터 2015년 사이에 지수선물 데이트레이딩을 시작한 사람 전부, 19,646명입니다. 표본을 고른 것이 아니라 그 기간에 시작한 사람을 한 명도 빼지 않고 넣었습니다. 거래소 기록을 그대로 받았으니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금방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오래 버틴 쪽만 따로 떼어 봤습니다. 300거래일이 넘도록 계속한 사람들. 1년을 훌쩍 넘겨 자리를 지킨 쪽입니다.
그중 97%가 돈을 잃었습니다. 브라질 최저임금보다 많이 번 사람은 1.1%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이 덧붙인 한 줄이 예상 밖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래 한 사람이 덜 잃는 경향 같은 것이 데이터에 없었습니다. 대만에서 거래소 전체를 15년치 훑은 연구도 비슷한 자리에 도착했습니다. 수수료를 빼고 나서 꾸준히 벌어간 사람은 1%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가 세지 않은 것

보통 이 숫자는 "그러니 하지 마라"로 읽힙니다. 그런데 이 연구들이 세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방향을 맞혔는지 아닌지는 세지 않았습니다. 셀 수도 없습니다. 남은 것은 계좌 잔고뿐이니까요.
그러니 물어볼 자리가 하나 생깁니다. 맞히는 능력이 늘면 결과도 따라 좋아질까요.
이 질문을 100년 전에 정면으로 겪은 사람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래리 리빙스턴이라고 부르는데, 실존 인물은 아닙니다. 기자 에드윈 르페브르가 1923년에 펴낸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의 화자이고, 그 모델이 당대에 이름을 날린 투기꾼 제시 리버모어였습니다. 앞으로 나올 인용은 전부 이 책 1장과 2장에서 가져왔습니다.
하루 다섯 시간, 숫자만 바뀌었다

화자는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주식 중개업소의 시세판 담당 사환으로 들어갑니다. 열네 살이었습니다. 하는 일은 객장 벽에 걸린 큰 판에 가격을 적어 넣는 것이었습니다. 손님 한 사람이 시세를 받아 적는 기계 옆에 앉아 숫자를 소리쳐 불러 주면, 그것을 받아 판에 옮겼습니다. 그 속도가 빠르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때 그 아이의 눈에 시세는 한 주에 몇 달러라는 뜻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숫자였다. 물론 무언가를 의미하기는 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늘 변했다. 내가 관심을 둘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변화뿐이었다.
왜 변하는지는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루 다섯 시간, 토요일에는 두 시간 동안 머릿속에 있던 것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숫자는 언제나 변하고 있다는 것.
몇 달이 지나자 오르거나 내리기 직전의 모양이 눈에 익기 시작합니다. 그는 그것을 습관 같은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쌓이면서 선례가 되었고, 열네 살 무렵에는 이미 머릿속으로 다음 움직임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수첩을 하나 삽니다. 그 수첩은 머릿속으로 백만 달러를 벌었다 잃었다 하는 가상 매매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맞힌 것과 빗나간 것의 기록이었다. 나는 앞으로의 움직임을 판단하는 일 다음으로, 내가 정확히 관찰했는지를 확인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이 있었다.
월요일에 종목과 가격을 적고, 과거의 모양을 떠올려 화요일과 수요일에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적어 둡니다. 그리고 실제 기록과 대조합니다. 여섯 달을 그렇게 했습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 여섯 달이 시세를 읽는 훈련이었습니다.
이익은 3달러 12센트였다
어느 날 나이 많은 사환 하나가 점심 먹는 자리로 와서 돈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벌링턴에 좋은 정보가 있는데 같이 들어갈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5달러만 걸면 5주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열네 살짜리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내 관심은 돈을 두 배로 불리는 데 있지 않았다. 벌링턴이 오른다는 그의 말에 있었다.
그는 상대를 붙잡아 세워 놓고 수첩을 꺼냅니다. 정말 오를 것이라면 자기가 적어 둔 수치가 그것을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들여다보니 벌링턴은 오르기 직전에 늘 하던 그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진 돈을 전부 건넸습니다.
두 사람이 돈을 들고 간 곳은 버킷숍이었습니다. 실제로 주식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시세가 오를지 내릴지에 돈을 거는 가게입니다. 손님이 맡긴 증거금만큼만 가격이 반대로 가면 거래는 자동으로 닫히고 전표는 종잇조각이 됩니다.
이틀 뒤에 정산했습니다. 몫으로 받은 이익은 3달러 12센트였습니다.
백 주로 거래하면 열 배 더 옳은 것이다
그 뒤로는 점심시간마다 버킷숍에 갔습니다. 사는 쪽인지 파는 쪽인지는 상관없었습니다. 좋아하는 종목을 붙들거나 남의 말에 얹혀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를 따르고 있었으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개업소 급료보다 버킷숍에서 빼내는 돈이 많아졌고, 그래서 일을 그만둡니다.
열다섯에 처음 천 달러를 손에 쥐고 어머니 앞에 내놓습니다. 어머니는 그 돈을 유혹이 닿지 않는 저축은행에 넣어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작 본인 머릿속에 있던 것은 다른 계산이었습니다.
열 주로 확신을 시험해서 내가 옳았다면, 백 주로 거래하면 열 배 더 옳은 것이다. 증거금이 늘어난다는 것은 내게 그런 뜻이었다.
돈이 늘어난다는 말을 옳음이 늘어난다는 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스무 살에는 현금 1만 달러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버킷숍들이 그를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증거금을 내밀면 쳐다보기만 하고 오늘은 거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소년 투기꾼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는 가명을 쓰기 시작합니다. 어느 지점에서는 스스로를 케임브리지의 에드워드 로빈슨이라고 소개하고, 인상착의를 묻는 본점 전화에 키 작고 뚱뚱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이라고 전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지배인이 곧이곧대로 말해 버려서 그날로 쫓겨났지만요.
마지막까지 그의 거래를 받아 준 큰 가게는 다른 방법을 씁니다. 3포인트 증거금을 걸게 하고, 거기에 웃돈을 얹었습니다. 90에 사면 전표에는 91이 넘는 값으로 찍히게 만든 것입니다. 사고 나서 가격이 1포인트 넘게 올라도 그 자리에서 닫으면 손해가 나는 구조였습니다.
그 조건에서도 그는 결산하면 이기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여섯 달 만에 빈털터리가 됐나

스물한 살에 그는 가진 것 전부인 2,500달러를 들고 뉴욕으로 갑니다. 이제 진짜 거래소 회원사에서, 실제로 주식이 오가는 자리에서 하고 싶었습니다. 원천 가까이에 있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여섯 달도 못 되어 빈털터리가 됩니다. 가져간 돈과 거기서 번 돈을 다 잃고 회사에 몇백 달러를 빚집니다.
이유를 본인이 한 줄로 적어 놓았는데, 처음 읽으면 앞뒤가 안 맞습니다.
이유를 말해 주겠다. 버킷숍에서 거둔 그 대단한 성공 때문이었다.
버킷숍에서 그가 하던 것은 시세판에 적힌 가격에 돈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사기 전부터 자기가 얼마를 치를지 정확히 알았고, 언제든 1초 만에 닫을 수 있었습니다. 1포인트만 움직이겠다는 확신이 서면 반 포인트만 취하고 나오면 됐습니다.
거래소 회원사에서는 그 전제가 전부 사라집니다. 시세가 105로 찍히는 그 순간 거래소 바닥의 진짜 가격은 104나 103일 수 있습니다. 1,000주 매도 주문이 담당자에게 닿아 체결될 무렵이면 더 내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에 나갔는지는 보고를 받아야 알 수 있었습니다.
A. R. 풀러턴의 사무실에서 테이프는 내 매매 방식에 관한 한 언제나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문이 커지면 자기 매도가 가격을 더 끌어내렸습니다. 버킷숍에서는 계산에 넣을 필요가 없던 항목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방향을 읽는 능력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그 능력이 값을 받던 조건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즉시 체결, 눈에 보이는 가격, 자기 주문이 시장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상태. 셋 다 버킷숍에만 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정직하게 게임을 하게 되어서 잃은 것이 아니라, 무지하게 게임을 해서 잃은 것이다.
파산하고 나서 그가 한 일은 조금 이상합니다. 그는 자기를 일요판 부록의 십자말풀이에 매달리는 사람에 빗댔습니다. 풀기 전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부류라고요. 돈을 되찾고 싶다는 말보다 답을 알고 싶다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능력은 그대로였는데 결과가 뒤집혔습니다.
저기 300명이 보이나

밑천을 만들러 세인트루이스의 큰 버킷숍에 내려간 그는 호레이스 켄트라는 가명으로 이틀 만에 2,800달러를 법니다. 사흘째 아침에 사장실로 불려 갑니다.
덩치 큰 사장이 문을 열고 객장을 가리킵니다.
300명이야! 호구 300명! 저 사람들이 나하고 내 가족을 먹여 살려. 그런데 자네가 들어와서 이틀 만에, 내가 저 300명한테서 2주에 버는 것보다 더 챙겼어.
그러고는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나는 호구들 판돈에 반대로 걸어서 돈을 벌지.
손님의 반대편에 서 있으니, 손님이 이기면 가게가 집니다. 그러면 가게는 손님을 내보냅니다.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규칙이 원래 그렇게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의 문제였나
열네 살의 수첩부터 스물한 살의 파산까지, 적어도 그가 방향을 읽는 능력을 잃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갔습니다. 사이에서 바뀐 것은 체결 방식과 가격이 보이는 순서, 그리고 반대편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가였습니다.
브라질 연구로 돌아가 보면, 그 데이터가 실제로 말한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오래 한 사람들의 결과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곧 그들이 못 맞혔다는 뜻은 아닙니다. 숫자가 세고 있는 것은 결과의 분포지 각자의 사정이 아니니까요. 무엇을 보았고 왜 그렇게 눌렀는지는 그 표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만 100년 전의 한 사람이 같은 자리를 지나가며 남긴 기록이 있고, 그 사람의 경우에는 능력이 아니라 조건이 결과를 갈랐습니다.
이 책의 화자가 나중에 남긴 문장 하나가 그것을 정리합니다.
그들이 내 거래를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버킷숍 매매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주식 투기라는 게임에 몇 포인트의 등락을 노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쫓겨난 것이 배움의 시작이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배운 첫 번째는 자기 실력의 크기가 아니라 자기가 앉은 자리의 생김새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어떻게 만들지는, 앉은 사람이 정하지 않습니다.
이 편이 다룬 연구 — 데이트레이딩 성공률
브라질 상파울루대와 FGV의 연구진(Fernando Chague, Rodrigo De-Losso, Bruno Giovannetti)이 2020년에 발표한 「Day Trading for a Living?」은, 2013년부터 2015년 사이 브라질 선물거래소에서 지수선물 데이트레이딩을 시작한 개인 19,646명 전원의 거래 기록을 추적한 연구입니다. 표본 추출이 아니라 전수 조사였습니다.
300거래일을 넘겨 계속한 사람 가운데 97%가 손실을 봤고, 브라질 최저임금 이상을 번 사람은 1.1%였습니다. 연구진은 거래 기간이 길어질수록 성과가 나아지는 경향, 즉 학습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적었습니다.
대만 증권거래소 전체를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분석한 Barber·Lee·Liu·Odean의 연구 역시, 수수료를 제한 뒤 꾸준히 이익을 낸 데이트레이더가 1%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했습니다.
두 연구 모두 결과의 분포를 집계한 것이고, 개별 투자자가 왜 그런 결과에 이르렀는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이 글은 2026년 8월에 쓰였습니다. 본문의 연구 결과는 이미 발표된 과거 자료이며 전망·예측을 담지 않습니다. 특정 종목이나 거래 방식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출처: 에드윈 르페브르, 《Reminiscences of a Stock Operator》(1923) 1장·2장 · 연구 자료: Chague·De-Losso·Giovannetti(2020), Barber·Lee·Liu·Odean(대만 1992~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