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EO 서재책 한 권을, 끝까지 함께 읽습니다

마지막 30페이지는 조언이 아니라 숙제였다

해 질 녘 연습장 잔디에 흩뿌려진 무수한 골프공과, 매트에서 아직도 공을 치고 있는 한 사람
트레이딩에는 연습장이 없다. 이 숙제가 저자가 만든 연습장이다.

읽고 나서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되나

프로 골퍼가 되려는 사람이 연습장에서 공 1만 개를 칩니다. 그 공에는 상금이 하나도 걸려 있지 않습니다. 스윙이 몸에 새겨질 때까지 그냥 치는 겁니다.

트레이딩에는 그 연습장이 없습니다. 첫날부터 실전이고, 첫 스윙에 돈이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1만 개를 치지 않습니다.

마크 더글러스가 2000년에 쓴 트레이딩 심리학 고전 《Trading in the Zone》은, 책의 대부분을 심리에 쓰고 마지막 30페이지를 조언이 아니라 숙제에 씁니다. 없는 연습장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절차입니다. 그리고 그 숙제를 내밀기 전에 저자가 먼저 이렇게 경고합니다.

처음 두어 번의 시도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느껴져도 놀라지 마라.

읽고 나면 이상합니다. 연습이 어려우면 설계가 잘못된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어려움이 설계의 실패가 아니라 설계의 목적입니다.


⚠️ 먼저 짚고 갑니다

이 편은 2000년에 미국 선물시장 기준으로 쓰인 훈련 절차를 다룹니다. 계약 명세도 증거금도 지금과 다릅니다. 그대로 따라 하시라는 뜻이 아니고, 따라 할 수 있게 옮기지도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수치와 실행 규칙은 원서에 있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건 왜 그렇게 설계했는가입니다. 계약 규격은 26년 사이에 바뀌었지만 설계의 이유는 그대로거든요.


목적이 돈이 아니라는 게 이 숙제의 전부다

카지노는 블랙잭 한 판을 예측하지 않습니다. 규칙이 만들어주는 작은 우위가 있고, 판이 충분히 쌓이면 그 우위가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만 압니다. 그래서 카지노는 한 판을 잃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표본이 하나 쌓였을 뿐이니까요.

이 숙제의 목적이 그겁니다.

이 연습의 목적은, 트레이딩이 그저 단순한 확률 게임이며 슬롯머신 손잡이를 당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설득이 아니라 납득입니다. 그리고 납득은 읽어서 생기지 않습니다.

여기서 대부분이 놀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연습에 쓸 매매 방법은 평범해도 된다는 겁니다. 직접 만들었든 남에게 샀든 상관없고, 최고의 방법을 찾느라 시간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 이 연습에서 배울 것이 돈을 버는지 여부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연습에 들어가는 돈을 교육비로 여기라고 표현합니다.

읽고 나면 어리둥절합니다. 좋은 방법을 찾는 게 트레이딩의 전부 아니었나. 분석은 이 문제의 답이 아니라는 것, 그게 이 책이 처음부터 해온 말입니다.

대신 타협 불가능한 조건이 딱 하나 붙습니다. 우위를 정의하는 기준이 주관적 판단을 요구하지 않을 만큼 정밀해야 한다는 겁니다. 시장이 조건에 맞으면 거래가 있고, 아니면 없습니다. "오늘은 좀 애매한데" 하고 고민할 여지가 남아 있으면 그건 아직 기준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조건을 이 숙제의 진짜 관문으로 읽는 이유가 있습니다. 애매함이 남아 있으면 그 자리로 두려움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나오는 쪽이 훨씬 어렵다

들어가는 설계보다 나오는 설계가 훨씬 어렵습니다. 꾸준히 성공하는 트레이더가 익혀야 할 기술 중에 이익을 실현하는 법이 가장 늦게 통달된다고요.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건 이 책의 범위를 넘는다고까지 씁니다.

이 대목의 태도가 유독 다정합니다. 이익을 더 챙기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이 긴장을 풀기를 바라서입니다. 다른 걸 다 익힌 뒤에도 이건 오래 걸린다고요.

대신 감정을 이기려 하지 말고 규칙으로 우회하라고 합니다. 그 규칙이 분할 청산입니다.

전제부터 명확합니다. 시장이 내 방향으로 얼마나 갈지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시장은 좀처럼 곧장 가지 않고, 오른 만큼 일부를 되돌립니다. 그 되돌림이 이기는 거래에 머무는 걸 지독하게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처방은 얼마나 갈지 맞히는 것을 아예 포기하는 쪽입니다. 포지션을 나눠 놓고, 시장이 조금이라도 주면 일부를 먼저 덜어냅니다. 맞히려 하지 않고, 맞히지 못해도 되는 상태를 만드는 겁니다.

이 방식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밝힙니다. 저자가 1979년부터 몇 해 동안 자기 매매 기록을 전부 뜯어본 결과였습니다. 결국 손실로 끝난 거래들에서도 시장이 처음엔 조금 내 방향으로 갔다가 되돌아오더라는 것. 그 조금을 매번 챙겼다면 어땠을까에서 출발한 설계입니다.

리스크를 먼저 정하고 시장이 내주는 만큼 일부씩 확정해 가는 분할 청산 개념 도해
얼마나 갈지 맞히는 것을 포기하는 데서 출발한 설계다.

잃을 방법이 없는 상태를 한 번 겪게 하려는 장치

그렇게 두어 번 덜어낸 다음, 손절 자리를 처음 샀던 가격까지 끌어올립니다. 이제 시장이 거기까지 내려와도 본전입니다. 남은 포지션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거래는 손해가 아닙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닌 한 잃을 방법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를 한 번 경험해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표현이 유독 셉니다.

돈 때문이 아닙니다. 느낌 때문입니다. 잃을 방법이 없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화면을 보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몸이 알게 됩니다. 근심 없이 시장을 보는 상태가 관념이 아니라 기억이 됩니다.

높이 걸린 외줄과 그 아래 팽팽하게 쳐진 그물, 줄 시작점에 손을 늘어뜨린 채 편안히 서 있는 사람
잃을 방법이 없는 자리에 한 번 앉아본 사람은 같은 화면을 다르게 본다.

반대 장면은 아마 겪어보셨을 겁니다. 이기고 있는데 더 갈 것 같아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습니다. 시장이 진입 지점까지 되돌아옵니다. 손실로 끝나는 게 싫어서 당황해 던집니다. 나오자마자 시장이 튀어 오릅니다.

일부를 미리 확보해뒀다면 당황할 이유 자체가 없었던 상황입니다. 감정을 이겨서가 아니라, 감정이 개입할 자리를 미리 없애서요.


활자를 키워도 부족하다

그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원서에는 이런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출판사가 이 페이지의 글자를 아무리 크게 만들어도 부족하다고요.

책을 쓰다가 조판을 끌어들이는 문장은 흔치 않습니다. 심리를 다루는 책이 마지막에 기댈 것이 활자 크기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페이지의 글자는 실제로는 다른 데와 똑같은 크기로 인쇄돼 있습니다.


스무 번을 다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트레이더는 가장 최근 거래 하나에 기분이 통째로 좌우됩니다. 그래서 이 숙제는 성공과 실패의 단위를 거래 하나에서 스무 거래 묶음으로 옮깁니다.

왜 하필 스물이냐. 방법에 공정한 시험을 줄 만큼은 크고, 그 방법이 시들해졌을 때 너무 늦기 전에 알아챌 만큼은 작은 크기여서입니다.

방법이 시드는 건 정상입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자기 생각을 갖고 오고, 있던 사람은 떠납니다. 그 교체를 미리 계산에 넣을 수 있는 기준은 없습니다.

실행 규칙은 한 줄입니다. 내 조건이 나타나는 다음 스무 번을 무슨 일이 있어도 전부 매매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합니다. 표본을 다 채우기 전에는 중간에 그만두지도, 기준을 바꾸지도 않습니다. 카지노가 어떤 판에 낄지 고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유리한 확률의 이득은 모든 판에 참여해야 실현되니까요.

1번부터 20번까지 스무 칸으로 그려진 거래 표본 격자
카지노는 어떤 판에 낄지 고르지 않는다.

그래서 금액 설정에도 원칙이 하나 붙습니다. 스무 번을 전부 잃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 크기로 잡으라는 것. 그리고 겁이 난다고 손절 자리를 가깝게 당겨오지 말고, 대신 사는 양을 줄이라고 합니다. 손절 폭은 시장 구조가 정하는 것이지 내 담력이 정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편하지 않으면 모의 계좌로 하라고 합니다. 창피한 일이 아니라 설계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정면충돌이 일어난다

여기까지 설계를 마치고 나서, 이 연습이 실제로 무엇이 될지 정직하게 예고합니다.

이 연습은 확률로 객관적으로 생각하려는 욕구와, 그 욕구와 충돌하는 내면의 모든 힘 사이에 정면충돌을 만들어낸다. 이 연습에서 겪는 어려움의 크기는 그 갈등이 존재하는 정도에 정비례한다.

이게 이 숙제의 진짜 기능입니다. 돈을 버는 장치가 아니라, 내 안에 무엇이 얼마나 버티고 있는지를 재는 장치. 스무 번이 수월했다면 이미 넘어온 것이고, 자꾸 규칙을 어기게 된다면 그 자리에 아직 버티고 있는 게 있다는 뜻입니다. 잘 안 되는 것 자체가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갈등이 나타났을 때의 처방도 싸우는 쪽이 아닙니다. 부정하지 말고, 그것도 자기 정신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고, 자기가 무엇을 하려던 중이었는지에 다시 집중하라고 합니다.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도 명확합니다. 스무 번 이상의 표본 하나를, 저항이나 딴생각의 방해 없이, 정해둔 대로 정확히 하며 통과할 수 있을 때.

주목할 건 이 기준에 수익이 없다는 점입니다. 얼마를 벌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상태로 지나왔는지가 기준입니다. 얼마나 걸릴지는 미리 정해두지 말라고 합니다. 걸릴 만큼 걸린다고요.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문장이 이겁니다.

큰 번영이 있기를 바란다. "행운을 빈다"고 말하고 싶지만, 적절한 기술을 획득하는 작업을 한다면 정말로 행운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행운이 필요 없어지는 지점까지 데려다놓는 것. 그게 이 책이 하려던 일이었습니다.


2026년에 이 숙제를 받아든다면

처음 질문의 답은 짧습니다. 읽기만 하고 끝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해는 인식을 바꾸지만 행동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확률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도 자기 계좌 앞에서는 손이 굳습니다. 개에게 한 번 물린 아이는 눈앞의 강아지가 안전하다는 걸 알고도 다리가 굳고요. 행동을 바꾸는 건 반복된 경험뿐이고, 마지막 30페이지에 남은 건 그 경험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절차입니다.

2026년 상반기 코스피는 101% 올랐습니다. 반기 기준 역대 최고 상승률이었습니다. 그리고 7월엔 한 달 만에 −34%까지 갔다가 마지막 날 하루에 17.91% 올랐습니다. 46년 만의 하루 최대 상승폭이었고요. 같은 기간 반대매매 — 담보가 부족해진 계좌를 증권사가 강제로 파는 것 — 는 반년 사이 일곱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파이낸셜뉴스·머니투데이·서울경제). 이 일곱 달 동안 정해둔 것을 스무 번 연속으로 지킬 수 있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숫자로는 답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다음에 시장이 어떻게 될지는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아니었고, 그 논지대로라면 답할 수 있는 질문도 아니었습니다.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이쪽입니다. 다음번에 그런 달이 왔을 때, 나는 내가 정해둔 것을 할 수 있는가.

당장 해볼 수 있는 건 하나입니다. 매매 기록에 수익 대신 "지켰는가"를 적어보는 것. 얼마를 벌었는지 말고, 들어가기 전에 정한 것을 그대로 했는지만 O와 X로요. 스무 줄을 채워보면 자기가 어디서 무너지는지가 숫자보다 정확하게 보입니다.

읽는 것으로는 답이 안 나옵니다. 스무 번 해봐야 나옵니다.


이 글은 2026년 8월에 쓰였습니다. 본문이 다루는 훈련 절차는 2000년 미국 선물시장을 기준으로 원서에 실린 내용이며, 현재 시장의 계약 규격·증거금과 다릅니다. 구체적인 실행 수치와 규칙은 이 글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 원서를 보셔야 합니다. 특정 매매 기법이나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으며,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시장 수치는 2026년 1~7월에 확정된 과거 자료입니다.

출처: 마크 더글러스, 《Trading in the Zone》 11장 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