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7월 이후로 화면 보는 게 예전 같지 않다면
착각이 아닙니다.
2025년 말 4,214였던 코스피는 2026년 6월 30일 8,476으로 반기를 마쳤습니다. 반년에 101% 올랐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7월 한 달 동안 5,590선까지 밀렸다가, 31일 하루에 17.91% 올라 6,595로 끝났습니다.
보통은 몇 년에 걸쳐 겪을 도취와 붕괴와 반전을 일곱 달 안에 다 통과한 셈입니다. 그 일곱 달을 실제 계좌로 지나왔다면 무언가가 남았을 겁니다.
마크 더글러스가 2000년에 낸 《Trading in the Zone》 10장이 그 남은 것을 다룹니다. 앞으로 나올 인용도 전부 그 10장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나쁜 소식부터 말해야 합니다. 한 번 생긴 믿음은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장의 출발점입니다.
그럼 방법이 아예 없는 걸까요.
믿음은 파괴되지 않는다
믿음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생명을 갖는 것처럼 굴며 현재 형태를 바꾸려는 힘에 저항하고, 살아 있는 동안 표현을 요구하고, 우리가 그 존재를 의식하든 하지 않든 계속 작동합니다.
첫 번째 특징에서 단호한 주장이 나옵니다. 일단 형성된 믿음은 파괴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근거는 물리학입니다. 에너지는 창조될 수도 파괴될 수도 없고 오직 변환될 뿐이라는 원리요. 믿음이 구조화된 에너지라면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없애려 들면 어떻게 되는지도 설명됩니다. 누군가 나를 파괴하려 든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방어하고, 맞서 싸우고, 위협을 알기 전보다 더 강해질 겁니다. 무시하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는 모든 사람이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면, 오래지 않아 누군가를 붙잡고 얼굴을 들이밀게 될 겁니다.
의도적으로 무시당하면 각각의 믿음도 똑같이 행동한다. 의식적 사고 과정이나 행동 속으로 자기 존재를 밀어 넣을 방법을 찾아낸다.
7월은 잊자가 통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잊으려는 시도 자체가 그것을 키웁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어떤 믿음들을 잃어버리며 살아왔습니다. 파괴할 수 없다면 그것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상사 앞에서
표현을 요구한다는 두 번째 특징에는 일상적인 예가 붙어 있습니다.
직장에서 윗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믿음이 반박하고 싶은 믿음보다 힘이 세면 우리는 참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조용한가. 결코 아닙니다. 상대의 논점 하나하나를 속으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표현이 밖으로 나오지 않을 뿐, 요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쏟아낼 방법을 찾습니다. 들어줄 것 같은 사람 아무나 붙잡고, 자기가 무엇을 견뎌야 했는지 늘어놓게 됩니다.
산타클로스는 어디로 갔나
어릴 때 나는 산타클로스와 이빨요정을 믿도록 배웠다. 이 둘은 지금 내 정신 체계에서 비활성이고 기능하지 않는 믿음의 완벽한 예다.
지금 누가 와서 산타클로스가 문 앞에 있다고 하면 농담으로 취급할 겁니다. 그런데 다섯 살이었고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다면, 최대한 빨리 뛰어갔을 겁니다. 길을 막는 어떤 장애물도 넘었을 겁니다.
산타클로스라는 개념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하나뿐입니다.
거기에 더 이상 에너지가 없다는 것. 에너지가 없으면 인식이나 행동에 힘으로 작용할 잠재력이 없다.
이 과정을 비활성화(de-activation)라고 부릅니다. 부모가 그를 설득했을 때 벌어진 일은 믿음의 파괴가 아니라 에너지의 이전이었습니다. 일부가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새 믿음으로 옮겨간 겁니다.
이제 머릿속에는 모순된 두 개념이 나란히 있습니다. 산타는 있다, 산타는 없다. 차이는 담긴 에너지의 양뿐이고, 그래서 기능적으로는 아무 갈등이 없습니다.

믿음을 바꾸는 비결은, 우리가 믿음을 바꾸는 게 아니라 한 개념에서 다른 개념으로 에너지를 이전하고 있을 뿐임을 이해하는 데 있다.
모퉁이를 돌자
그 이전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는 아이와 개로 설명됩니다.
아주 어릴 때 개에게 심하게 물린 아이가 있습니다. 자라면서 기억에 말을 붙이기 시작하고, 아마 이런 믿음을 갖게 됩니다. 모든 개는 위험하다. '모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순간 그 믿음은 모든 개를 피하도록 보장하는 구조를 갖습니다. 의심할 이유도 없습니다. 겪은 모든 일이 그것을 확인해줬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부모와 걷다가 앞이 안 보이는 모퉁이를 돕니다. 그리고 마주칩니다.
또래 아이 여럿이 개들과 놀고 있고, 아주 즐거워 보입니다.

이것을 우연한 창의적 경험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믿음이 참이 아니라는 반박할 수 없는 정보와,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마주친 겁니다.
갈림을 만든 것
여기서 이야기가 두 갈래로 갈립니다. 그리고 갈림을 만드는 것은 증거의 세기가 아닙니다.
아이가 저 아이들처럼 되고 싶다고, 개와 놀고 싶다고 마음먹었다고 해봅시다. 그럼 안에서 두 힘이 부딪힙니다. 모든 개는 위험하다는 믿음과, 놀고 싶다는 욕구. 어느 쪽이 이기느냐는 에너지의 양이 정합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믿음 쪽이 훨씬 큽니다. 그래서 다음번 개를 만났을 때 그는 좌절합니다. 만지고 싶은데, 이 개가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손이 안 나갑니다.
해결은 한 번에 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겨우 멀찍이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도망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나쁘게 끝나지 않은 만남 하나하나가 모든 개는 위험하다에서 음의 에너지를 조금씩 빼냅니다. 그렇게 간격이 좁혀지다가 결국 손이 닿는 지점까지 갑니다. 실제로 만지는 순간, '모든'에 남아 있던 에너지 대부분이 새 믿음으로 넘어갑니다.
이 과정을 통과한 어른들은 대개 자기가 어떻게 해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어릴 때 개를 무서워했었는데 크면서 자연히 벗어났어요."
반대쪽은 어떨까요. 아이가 개와 놀 생각이 딱히 없는 경우입니다. 그럼 머릿속에 두 믿음이 그냥 공존합니다. 모든 개는 위험하다, 그리고 개가 전부 위험하진 않다. 이 상태를 활성 모순(active contradiction)이라고 부릅니다. 둘 다 에너지를 갖고 있고 둘 다 표현을 요구합니다.
문제는 에너지 크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주 많은 음의 에너지를 갖고 정신의 핵심 수준에 있고, 두 번째는 표면에 아주 적은 에너지로 있습니다. 그 결과가 이겁니다.
새 자각은 그렇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가능성을 인식하게 할 만큼의 에너지는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행동에 힘으로 작용할 만큼의 에너지는 없을 수 있다.
보이긴 하는데 몸이 안 움직이는 상태. 안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얼어붙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못박힙니다. 이것이 사실상 모든 트레이더가 풀어야 할 심리적 딜레마라고.
확률의 본질을 이해했고, 다음 거래가 그저 일련의 거래 중 하나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여전히 주문이 안 나간다.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해에 실린 에너지가 부족해서입니다.

언제나 같은 지점에서 무너지는 사람들
세 번째 특징으로 가면 더 곤란한 경우가 나옵니다. 무엇이 작동 중인지조차 모르는 경우입니다.
10장 마지막에 여러 해에 걸쳐 관찰한 것이 하나 나옵니다. 꾸준히 성공하는데 자산 축적에서 특정 문턱을 결코 넘지 못하는 트레이더들입니다.
그들은 기업 세계의 많은 여성 임원이 겪는 그 유명한 유리천장과 비슷한, 보이지 않지만 아주 실재하는 장벽을 발견했다.
관찰이 구체적입니다. 그들은 몇 달에 걸쳐 꾸준히 오르는 자산 곡선을 만들었고, 상당한 드로우다운이 언제나 자산 곡선의 같은 지점에서 일어났습니다. 시장 상황과는 무관하게요. 무슨 일이었냐고 물으면 대개 운이나 시장 탓을 했습니다.

이것을 부정적 존(negative zone)이라고 부릅니다. 존에 있을 때 돈이 마법처럼 흘러들어오듯, 해소되지 않은 자기 가치 문제가 작동하면 그만큼 쉽게 흘러나간다는 겁니다. 그 뿌리로 드는 것은 어릴 때 들었을 법한 말들입니다. 네가 그럴 만하니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내 말을 안 듣더니 봐라.
이 자기 파괴적 믿음 대부분은 오래전에 잊혔고 잠재의식 수준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잊었다고 해서 비활성화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걸 다 파헤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처방이 훨씬 실무적입니다. 그런 믿음의 존재를 자각하고, 그것들이 표현되기 시작할 때 보정할 구체적 조치를 매매 규율에 넣어두라는 겁니다.
파헤치지 말고 규칙으로 막으라는 쪽입니다. 그리고 자각의 첫걸음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기 계좌 곡선을 길게 펴놓고, 크게 밀렸던 지점들이 서로 비슷한 높이에 있는지 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기 가치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시장 탓으로만 적어두기 전에 한 번 더 들여다볼 이유는 됩니다.
그래서 7월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화면을 볼 때마다 조용히 작동할 겁니다.
다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10장의 답은 지우라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옮기라는 겁니다. 산타클로스가 그랬듯 개념은 그대로 두고 거기 실린 힘만 다른 개념으로 넘기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은 마음먹기가 아니라 경험입니다. 나쁘게 끝나지 않은 만남 하나하나가 조금씩 에너지를 빼내는, 그 아이가 개를 만지기까지 거쳐야 했던 지루한 과정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가 결정적입니다. 두 갈래를 가른 것은 증거가 아니라 욕구였습니다. 개와 놀고 싶었던 아이는 건너갔고, 딱히 그럴 생각이 없던 아이는 알지만 못 하는 상태에 남았습니다. 열 장을 읽고도 주문이 안 나가는 이유가 이해 부족이 아니라면, 물어야 할 것은 더 배웠는가가 아닙니다.
그럼 트레이더에게 그 「멀찍이 서 있기」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반복해야 에너지가 옮겨가는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2026년 8월에 쓰였습니다. 본문의 시장 수치는 2026년 1~7월에 확정된 과거 자료이며 전망·예측을 담지 않습니다.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출처: 마크 더글러스, 《Trading in the Zone》 10장 · 시장 자료: 파이낸셜뉴스·머니투데이 (2026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