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호가창을 보고 정반대로 움직였다

공짜 돈, 오늘만
1987년 봄 시카고. 미시간 애비뉴 인도에 한 남자가 팻말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고급 백화점과 부티크가 늘어선, 시내에서 가장 붐비는 거리입니다.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공짜 돈. 오늘만."
지역 방송 〈갓차 시카고〉가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방송국은 그에게 상당한 현금을 쥐여주고, 달라는 사람 누구에게든 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팻말을 읽고 지나갔습니다. 남자가 좌절해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돈 필요하신 분. 제발 제 돈 좀 가져가세요. 다 못 나눠주겠어요. 그래도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일부러 길을 돌아 그를 피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정장에 서류가방을 든 남자가 지나가자 그가 다가가 물었습니다. 돈 좀 드릴까요.
"오늘은 됐습니다."
그날 돈을 달라고 한 사람은 딱 한 명이었습니다. 요구한 금액은 25센트. 버스 환승권 값입니다.
팻말은 모두에게 똑같이 보였습니다. 읽힌 내용만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마크 더글러스가 2000년에 낸 《Trading in the Zone》 9장이 이 장면을 가져옵니다. 앞으로 나올 인용도 전부 그 9장에서 가져왔습니다.
왜 아무도 받지 않았나
가능한 설명부터 하나씩 지워집니다.
팻말을 못 읽었을까요. 붐비는 거리였고 글자는 컸습니다. 돈에 관심이 없었을까요.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돈을 좇는 데 쓰이는지 생각하면 그럴 리 없습니다.
그들은 열려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 틀림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공짜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과 눈앞의 팻말 사이에 생긴 모순은 아주 간단하게 풀립니다. 저 사람이 미친 거라고 결정하면 됩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돌아갔을 문장까지 재구성돼 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돈을 받는 일은 좀처럼 없다는 걸 다들 안다. 시내에서 가장 붐비는 거리의 낯선 사람에게서라면 더욱 그렇다. 사실 저 사람이 정말로 돈을 나눠주고 있다면 이미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다. 저 사람은 미친 게 틀림없다. 멀찍이 돌아가는 게 낫겠다."
이 사고 과정의 조각이 전부 원래 믿음과 맞물립니다. 공짜 돈이라는 말이 의도된 대로 인식되지 않았고, 미쳤다는 판단이 위험에 대한 기대를 만들었고, 일부러 돌아간 행동이 그 기대와 맞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치를 피했다는 안도감이 남았을 겁니다.

그 안도감은 진짜였습니다. 느낌은 언제나 절대적 진실입니다. 다만 그 느낌을 만든 믿음은 그날 그 거리의 현실과 맞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뭘 하는지 물으면
눈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누구나 답합니다. 귀도, 코도,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정확히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대개 머릿속이 하얘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과 행동으로 믿음을 표현하고, 남이 표현하는 믿음과 부딪히며 삽니다. 그런데 몸 어딘가에 문제가 생기면 자연히 그쪽으로 주의가 가면서도, 삶이 잘 안 풀린다는 문제가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을지는 좀처럼 떠올리지 않습니다. 자기 어려움의 원천으로 믿음을 들여다보기까지는 대개 몇 년의 극심한 좌절이 걸린다고 합니다.
25센트를 받아간 한 사람
받아간 한 명으로 돌아가 봅시다.
보기에 그는 구걸하는 사람이었고, 구걸하는 사람은 공짜 돈의 존재를 분명히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같은 팻말이 그에게만 팻말대로 도착했습니다. 인식도 해석도 방송국이 의도한 것과 정확히 맞았습니다.
그리고 한 줄이 붙습니다.
물론 그가 몰랐던 것은,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한 줄이 9장에서 가장 서늘합니다. 그의 믿음은 문을 열어줬고, 그 문의 크기까지 정했습니다. 공짜 돈이 있다고 믿긴 했는데 그가 믿은 공짜 돈의 규모가 버스 환승권이었습니다.

10달러를 받고도 아플 수 있다
공짜 돈은 없다고 믿지만 만약에, 하는 태도로 자기 믿음을 잠시 유예해본 사람을 가정해 봅시다. 그가 다가가 10달러를 달라고 합니다. 남자는 즉시 10달러를 건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공짜 돈은 없다는 믿음은 유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생깁니다. 가장 흔한 것이 이런 말을 듣는 경험입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니, 돈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아.
그러니 아무 조건도 아무 핀잔도 없이 돈이 건네지는 경험은 순수한 환희를 만듭니다. 사무실로 돌아가 오늘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믿지 못할 거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아무도 안 믿어줍니다. 듣는 사람의 믿음이 그 이야기를 부정할 테니까요.
그런데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합니다. 더 달라고 하지 그랬어.
그의 마음 상태는 즉시 후회와 절망으로 뒤집힌다. 받은 것에 행복해하는 대신, 가질 수 있었지만 갖지 못한 것을 한탄하게 된다.
공짜로 받은 10달러인데도 아플 수 있습니다. 번 돈을 다 챙기지 못했다는 느낌은 잃은 것과 거의 같은 자리를 건드립니다.
진실은 통하는 것이다
믿음이 인식을 이렇게까지 정한다면, 무엇이 진짜인지는 어떻게 알까요. 답이 실용적입니다.
답은 '통하는 것'이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리 믿음이 현실을 100퍼센트 정확히 반영한다면 기대는 언제나 채워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만족한 상태에 있을 겁니다.
만족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환경 조건에 비추어 잘 작동하지 않는 믿음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믿음의 참과 거짓을 유용성으로 잽니다. 시장으로 옮기면 이런 물음이 됩니다. 계좌가 원하는 모양이 아니라면, 지금 붙들고 있는 믿음 중 무엇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가.
다시 그날의 수급표
2026년 7월 31일, 코스피는 하루에 17.91% 올랐습니다. 그날 외국인은 7조 2,196억을, 기관은 1조 1,782억을 순매수했고, 개인은 8조 2,543억을 순매도했습니다. 양쪽 다 그 방향으로는 사상 최대입니다. 같은 날, 같은 종목, 같은 화면 앞에서요.

누군가 이건 아니다 싶어 판 그 가격에, 누군가는 이건 기회다 싶어 샀습니다. 같은 초, 같은 호가창입니다.
여기서 누가 옳았나를 따지는 것은 쉽고 쓸모가 없습니다. 결과 하나로 판단을 채점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이 앞서 세워둔 전제니까요.
그리고 미리 그어둘 선이 있습니다. 그날 각자가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지어내지도 않겠습니다. 수급표는 누가 얼마를 샀고 팔았는지까지만 말해줍니다. 이 책의 틀로 보면 미시간 애비뉴에서 확인된 것과 비슷한 구조로 읽을 수 있다는 것, 거기까지입니다.
같은 정보가 다르게 읽히는 것은, 정보가 눈에 도착하기 전에 각자의 믿음을 먼저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팻말은 모두에게 똑같이 보였지만 읽힌 내용은 달랐고, 그 차이를 만든 것은 그날 거리에 있던 무엇이 아니라 각자가 그 거리로 들고 온 것이었습니다.
믿음은 문을 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의 크기까지 정합니다. 그날 산 쪽에도 25센트만 받아간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남는 물음은 남의 믿음이 아니라 자기 쪽입니다. 계좌가 원하는 모양이 아니라면 지금 작동하지 않는 믿음은 무엇인가. 그런데 그것을 찾아냈다고 해서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믿음은 반박당한다고 사라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조용해집니다.
이 글은 2026년 8월에 쓰였습니다. 본문의 시장 수치는 2026년 7월에 확정된 과거 자료이며 전망·예측을 담지 않습니다.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출처: 마크 더글러스, 《Trading in the Zone》 9장 · 시장 자료: 머니투데이 (2026년 7월 31일)